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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치도 발전하지 않았다.

by Renaissance

내가 아마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별거 아닌 존재임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천재가 태어난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나보다 3살 위의 형제는 태몽으로 용이 나왔고 임신한 어머니가 점집 앞을 지나는데 뱃속에 대통령이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셨단다. 그런 이상 징후가 쌓이니 용한 집을 찾아가 보셨고, 세상을 이롭게 바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거라고 했단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났는데 말 그대로 범상치가 않았다고 한다. 세살 무렵 신문을 보고 있길래 여느 아이들처럼 그림을 찾는 것이겠지 했는데 첫째는 신문을 소리내어 읽었다고 한다. 다섯살이 되자 한자를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IQ 테스트를 하던 시기였다. 영재교육이 당연하던 시기. 첫째는 무려 158을 받으며 교육청 연락을 받는다. 영재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첫째는 당연스럽게 영재학교에 가고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가 카이스트를 간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는 세살때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는데 둘째는 무려 일곱살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전교1등은 커녕 반 1등도 하지 못했다. 아이큐 테스트에는 132가 나왔다고 하니 첫째랑 비교하면 얼마나 미천한 숫자인가. 영재학교 영입 연락은 당연히 없었고, 아마 연락이 왔어도 부모님은 보내지 않으셨을 거다. 모든 것이 첫째에 비해서 느리고 모자란 둘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걱정어린 시선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원래 생겨먹은게 이래선지 인정욕구가 굉장히 강한 편이다. 내가 가진 능력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한다. 끊임없이 피드백을 원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직업은 성향을 생각하면 굉장히 잘못 고른 직업이다. 부모님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 난 사회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내가 쓰는 글에 은연중에 나타날테니 굳이 다시 쓰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대놓고 업적을 말하는 것보다 낯간지러운 것은 없으니까. 지금도 충분히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지만 나는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내 모습은 가짜고, 사실 나는 변변치 않은 사람인데, 사람들이 언젠가 그걸 눈치채버릴 것 같은 불안감. 한마디로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어차피 부족할 거니까. 안 믿을 거니까. 근원적인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양반이 사회적 인정조차,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복싱을 해도 기술이 늘어야 하고, 상대방을 이겨야 하고, 서핑을 해도 이 기술은 할 줄 알아야 하고, 남보다 잘 타야 하고, 역도를 해도 이 무게 이상은 들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건설적인 토론이 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잡지식을 쌓고 있다. 영화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운동이든, 과학이든, 역사든, 나는 준전문가 수준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냥 쉬는걸 가장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느낌이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이제 내 신체적 전성기는 지나갔고, 지능이든 신체든 내리막을 가고 있다. 혼자서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왜 저렇게 할까, 왜 이렇게 하지 않을까, 이러면 좋을텐데 하며 혼자서 아는 척을 하고 갑갑해 하지만, 나는 그런 내 시선이 맞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겁이 많은 개가 짖는 법이다. 그래서 섣불리 의견을 내는 것을 경계한다. 가르치는 직업을 피하는 이유다. 내 글에서는 확고한 주장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 내 확고한 톤을 듣고 착각해서 나를 맹신하게 될까봐 겁난다. 원래도 확신이 없었지만, 내가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더 없어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토론을 하는 때는 시나리오에 대해 얘기할 때 뿐인 것 같다. 그 외에는 그냥 토론을 피한다.


그렇다고 내 변변치 않음을 숨기고자 댓글로 아는 척을 하면서 불특정 다수와 싸우기 싫다.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피하는 행동이고, 죽을때까지 하기 싫은 행동이다. 내가 아무리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어 그런거라며 깨우쳐주겠다고 댓글을 싸지르지 말자. 내가 지켜야할 내 마지막 위엄이다.


인터넷에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극소수고, 그 극소수 중에 1퍼센트가 댓글의 90프로를 쓴다고 한다. 나는 절대 그 중에 한명이 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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