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감각은 당신에게 어떤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가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 기억이 완전했다면 인생을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이 축적되어 삶을 영유하는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인간은 잊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100년을 산다.

기억은 오감을 통해 저장된다. 시각적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오히려 청각, 미각, 촉각의 기억이 더 오래간다. 그 중 단연 최고는 후각이다. 겨울이 오면 추운 느낌 보다 겨울 냄새가 겨울의 기억을 자극한다.

추위를 싫어한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대지가 뿜어내는 더위의 향기가 좋다.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서슬퍼런 냄새가 나는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느끼는 정서는 서러움이다.

겨울은 참 서러운 계절이다. 끝내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던 불같았던 짝사랑의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택시비로 돈을 다 써서 집까지 두시간을 집에 걸어갔던 그 겨울은 너무나 추웠다.

남산타워가 보이던 곳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같은 서울임에도 유독 춥게 느껴지는 부대의 앞 뜰에서 담배를 피우며 남산타워를 바라봤다. 넌 코 앞에 있는데 왜 난 너에게 가지 못하는지, 으슬으슬 떨면서 억울해했다.

40년된 구옥에서 보일러를 틀어도 손발이 시려워서 방한슬리퍼와 장갑을 끼고 생활했던 동빙고에서, 불을 떼는게 낫겠다고 장작을 피워놓고 손을 녹이며 내가 영화로 성공하면 이것도 추억이 될까 눈물지었다.

영화촬영도 겨울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해야 했기에 추위를 참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추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겨울을 다른 정서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배려 때문일 것이다. 따뜻하게 데워둔 방에 엎드려 만화책을 본다던가,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는 다던가, 사랑하는 이가 따뜻한 손으로 잡아준다던가.

나에게도 분명 따뜻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다만 서러운 기억들이 먼저 떠올라 겨울이 되면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일테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날씨보다 추운건 내 마음이라서. 당신은 그렇지 않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