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 덕에 원하지도 않는 경영학과를 전공했다. 내가 다닌 대학의 경영학 교수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미국 유학파 출신이었다. 그리고 전부 다 신자유주의 학파였다. 전공과목은 그게 회계든, 재무든, 마케팅이든, 생산관리든 시장경제라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뭐 그거까진 이해하겠는데 어째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을 하는지, 모두 삼성 유학생 출신인지 궁금했다. 비록 20여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삼성이 망해도 한국이 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겠는데 차마 교수에게 대들 순 없었다. 그리고 반박을 해봤자 나에게 득이 될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잘 모를 노키아라는 회사가 있었다. 핀란드 회사였는데 놀랍게도 한때 전 세계에서 핸드폰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전자회사다. 지금의 애플 정도의 위상이었달까. 워낙 기업이 컸기 때문에 핀란드 GDP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어마어마했다. 헬싱키 증시의 70%를 차지했었으니 말 다했지. 노키아 말고는 딱히 회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 노키아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삼성이 우리나라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도 안 된다. 그러니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자들 논리에 따르면 노키아가 망했으니 핀란드는 망했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증시의 70%를 차지하던 기업이 쇠퇴하자 그 빈자리를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 잘 되는 것은 비단 그 기업이 잘나서가 아니다. 노키아에서 일하던 유수한 인력들이 기업이 망한다고 같이 없어지는게 아니다. 다른 일을 찾는다. 기업을 뒷받침해주는 정책과 인프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 기업이 빠진 자리에 다른 기업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삼성이 없어지면 한국이 망한다는 말은 삼성이라는 기업이 재벌총수 한 명의 힘으로 잘 된거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요즘 화덕피자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원래 화덕피자를 좋아했던 나이기에 새로 생기는 피쩨리아에 가서 마르게리타를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집은 도우가 쫄깃하네, 이 집은 토마토 소스를 기성품을 쓰네, 이 집은 공기빼기를 덜 했네 등등 나혼자 미슐랭을 메기고 있다. 유럽에서 살았던 경험때문에 애초에 피자를 이태리식 화덕피자로 배웠고, 미국식 오븐 피자에 반감을 가진 나로서는 이제야 피자가 정상화되어간다는 느낌이다. 간략하게 화덕피자와 오븐 피자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화덕피자는 말 그대로 가게에 화덕이 있고 오븐 피자 가게에는 오븐이 있다. 화덕과 오븐의 차이는 온도이다. 화덕은 온도를 600도까지 올릴 수 있다. 나폴리식 피자는 보통 400도에서 굽는다. 오븐은 보통 200도대이다. 화덕피자는 2-3분 짧은 시간동안 굽는다. 온도가 높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치즈가 녹고 도우는 구워진다. 오븐은 짧은 시간에 치즈를 녹일 수 없고 빵도 구워지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10-20분 동안 굽는다. 그래서 도우를 두텁게 하고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서 천천히 돌아간다.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압도적으로 화덕피자를 선호한다. 도우가 두꺼우면 그게 빵이지 피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두터운 도우의 피자는 피자빵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나에게 이상적인 환경이지만 사실 피자를 사먹지 않은지 20년 가까이 된다. 한국에 돌아오니 화덕피자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고, 있어도 너무 비싼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 화덕피자는 패스트푸드였다. 내가 원하는 토핑만 고르면 3분 안에 피자가 나왔다. 외식 메뉴 중에 가장 싼 것 중에 하나였다. 미국식 오븐 피자는 도저히 적응을 못했는데, 20년전 한국은 피자하면 피자헛이던 시절이다. 이후로도 새로운 피자 프랜차이즈들이 생겼는데 죄다 미국식 피자였다. 한국 피자시장을 영원히 차지할 것 같던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최그들어 점점 마켓쉐어가 줄어들고 있다. 외식업계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치킨과 피자와 중국집 삼파전이었던 배달시장에서 피자는 밀려난지 오래다. 경제지에서 피자의 몰락, 망해가는 피자시장 등의 제목을 못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자가 망했나? 아니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몰락한 부분을 중소 화덕피자 업체들이 채우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만 최근 반년 사이 화덕피자 가게가 네 개가 생겼다. 당연하게도,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가 망한다고 사람들이 피자를 안 먹지 않는다. 그 자리를 다른 플레이어들이 차지하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수직계열화 되어있는 영화시장의 빅 플레이어들은 이미 투자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이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안 되어 전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이창동 감독의 다음 영화가 넷플릭스다. 이창동 뿐일까?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감독의 다음 영화의 투자금을 과연 한국 투배사들이 마련할 수 있을까?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지 오래고, 영화시장의 건강이고 건전이고 자기들 수익만 좇으면서 티켓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리고 대형 투자 프로젝트가 관객을 못 모으면 홀드백이고 나발이고 2주만에 넷플릭스에 영화를 파는 것들이다. 그래놓고 저작권이나 수직계열화 등의 영화시장의 건강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고 하면 기자들을 풀어 지금 제도가 좋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기생충 못 만든다 따위의 기사를 쏟아낸다. 하루빨리 기존 투배사들이 정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영화가 산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합병을 하려는 이유는 오로지 돈을 덜 들이면서 극장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두 회사의 니즈가 맞아서이다. 합병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고 수익이 안 되는 극장들을 닫겠지. 차라리 배급 제작 부분을 없애버리면 더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씨제이, 롯데, 메가박스가 없어진다고 영화가 없어지지 않고 극장이 사라지지 않는다. 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