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불혹이 관계가 마려울때

by Renaissance

내성적이라 함은 외향적임의 반대말로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고 사람이 많은 자리를 피하려는 성향을 일컫는다. MBTI는 유사과학이므로 I니 E니 하지 말자. 외향내성적(Extroverted introvert) 인간도 있고 내성외향적 인간(Introverted Extrovert)도 있다. 어릴땐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관계에 휘둘렸기 때문에 외향내성적 인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나이가 불혹이 되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보니 가타부타 할 것 없이 쌉내성적 인간이다. 나이 든 현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관계의 피상성이다. 어릴땐 관계가 대단히 소중해보이고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왜 내가 그렇게 관계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는지 후회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그 관계들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모임, 단체에 속했었다. 소꿉친구들 모임, 중학교 모임, 고등학교 모임, 온갖 동아리, 전공 모임, 회사, 대학원 등 셀수 없이 많은 모임과 단체에 속했었지만 지금 나에게 남은 인맥은 학부시절 동아리 하나와 고등학교 모임 뿐이다. 개중에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은 동아리 내의 동갑 모임 서너명이니 40년을 살아오면서 몇 명 남지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주 연락하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장인이다보니 생활 패턴이 잘 맞지가 않다. 그리고 불혹인 남자들은 굉장히 바쁘게 산다. 나도 일이 있을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일만 하니 이해를 하지만, 지금처럼 갑자기 일이 끊겼을 때가 문제다. 관계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발정기가 온다.


갑자기 사람이 그리운데 부를 사람은 없고, 그냥 한두시간 노닥거릴 사람이 없나 카톡을 열어보지만 자주 연락하지 않은 사람에게 갑자기 차 한잔 하자고 다짜고짜 부르기도 뭐하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배드민턴, 테니스, 런닝 등의 운동 동호회나 취미 학원 같은 것 밖에 없더라. 더 캐쥬얼한 무언가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당근 소모임이었고, 당근 소모임을 통해 산책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소모임장이 나보다 더 내성적인 사람이라 모임을 만들어놓고 두달 동안 모임 공지가 없다가, 새로 참여한 멤버가 적극적으로 산책을 주선하자 용기를 내어 모임에 나갔었다. 두어번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니 나름 관계에 대한 욕구도 해소되고 좋네, 라고 생각한지 얼마되지 않아 내성적인 소모임장님은 모임에 참석한 적도 없으면서 갑자기 모임 인원을 30명으로 늘렸고, 사람들이 많이 가입하다보니 한번 산책할 사람을 모집하면 10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기도 했다. 네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나같은 내성적 인간이 10명 이상 모이는 모임에 나갈리가 있나. 한동안 추위를 핑계로 모임에 나가지 않고 알람을 꺼두고 살다가 관계가 마려워져서 다시 들어가보니 이미 모임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모임이 사라져 기록을 못 보지만 뭐 뻔한게 아닐까 싶다. 남녀 관계 트러블이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써야하는 에너지와 시간은 아깝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관계에 대한 발정이 나고,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인간은 이리도 복합적인 존재인 것인가. 물론 나만 그럴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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