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보았다. 2025 국제 스트리밍 페스티벌에서 국내 OTT·FAST 산업의 AI 혁신을 위한 현장 간담회라는 것이 열렸는데 케이팝데몬헌터스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과기부 차관과 CJ ENM 부사장이 한국에서 케데헌이 나오지 못한 것을 뼈아파 하면서 낼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 기사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케데헌은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만든 헐리우드 작품이니 한국 문화의 과실을 미국이 다 먹고 있다는 류의 주장. 근데 이 주장, 너무 기시감이 들지 않나? 2020년에 미나리가 나왔을 때에도 똑같은 얘기가 나왔고, 2022년 파친코가 나왔을 때에도 같은 얘기가 나왔고, 2023년 패스트 라이브즈가 나왔을 때에도 같은 얘기가 나왔다. 미나리 이후 5년 동안 한국에서 개발된 해외용 영화가 있었나? 한국이 주도해서 투자하고 제작한 영어 컨텐츠를 난 본 기억이 없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어 컨텐츠가 대박이 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다. 질문은 항상 비슷하다. 그 질문의 끝엔 '우리는 왜 못 만드나'로 귀결되고, 글로벌 IP를 개발해야 한다느니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느니 밥먹고 똥싸는 얘기로 끝난다. 단 한번도 유의미한 해결책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걸 보지 못했다. 우선 글로벌 IP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 자체가 틀려먹었다. 미나리가 글로벌 IP로 만들었나? 파친코는 글로벌 IP였나? 케데헌은? 책이 원작인 파친코를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다 오리지널 영화다. IP 얘기가 왜 나오느냐는 거다. 김치찌개가 잘 나가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햄버거에 김치를 넣어야 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김치찌개가 잘 나가면 꽁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자던가, 백김치를 넣은 김치찌개를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와야 정상이다. 갑자기 햄버거 얘기가 왜 튀어 나오느냐 이거다.
프랑스 감독들을 만나서 먹었던 충격 중에 영어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프랑스 영화인들은 모두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프랑스에서는 영화를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고. 마치 우리나라에서 취업하려면 영어 잘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거다. 프랑스인들은 영화를 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각본을 쓰고 장편영화를 연출한 사람 중에 영어를 잘 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한 번도 아니고 수많은 미팅에서 같은 얘기를 들었다. '아깝네요. 영어 실력이. 쓸데없는 능력인데.'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여러번 들은 이야기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영어는 '쓸데없는 능력' 취급 받는다. 그 말인즉슨,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는 기존 관계자들 중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거다. 물론 토플과 토익으로 무장해서 취업한 직장인들 만큼의 영어는 하겠지. 프리토킹이 가능하지 않고, 영어 문서를 작성할 능력이 없는 정도. 이런 판에서 어떻게 케데헌을 만들겠냐는 거지.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작년에 영어로 시나리오를 썼다. 한국 올로케인데 영어로 대사를 하는 영화 시나리오. 업계에서 받은 피드백은 왜 이런 시나리오를 썼냐는 거다. 절대로 투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한글로 번역해서 달라고 한 곳도 있었다. 왜 영어로 시나오를 썼냐는 질문이 나오는 시장, 한글로 번역해서 주면 안 되냐는 시장에서 케데헌이 어떻게 개발될 수 있을까. 애초에 영어로 사고할 생각이 없으면서 영어 컨텐츠를 어떻게 개발하려는 걸까. 내가 봤던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애초에 교포들이 만들었기에 가능한 컨텐츠다'라고. 한국에도 교포들이 많다. 영화 시장에서 이들을 안 찾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