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아닌 삶

by Renaissance

딱히 영화를 잘 찍을 자신이 있어서 영화감독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인생은 짧고 하고 싶은 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대단한 천재들이 하는 일이라서 나는 절대 못할 일이라 생각하고 도전할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었는데, 인생은 짧다는 응원에 용기를 얻어 도전했다. 내가 봉준호 감독님이나 드니 빌뇌브 감독처럼 될 거라고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굶어죽지만 않으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극장에 걸려서 보러는 가지만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극장을 나서는, 굳이 남아서 크레딧에서 감독 이름을 확인하지 않는 그런 영화들을 찍게 되리라, 그렇게만 되어도 성공이리라 생각했다. 코로나와 OTT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런 계획이 그럭저럭 성공했을 수도 있겠다. 이젠 진짜 천재가 아니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시장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영감의 원천을 물을때 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라고 답했다. 세상은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이미 수많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인간 문명이 가야할 길에 대한 명확한 길을 무수히 제시했음에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지만 여전히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인종 말살의 대상이었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인종 말살을 한다. 이런 부조리들을 보며 분노하고, 그 분노가 나에게 창작의 소재가 된다. 법으로 어느정도 까지 세세하게 정해놔야 사람들이 지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피해자인 사람이 복수를 위해 힘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똑같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야기라던가.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런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분노가 줄어들었다. 에너지가 줄어서 그런 것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있겠지만 점점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것 같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공동의 가치같은 건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무엇때문에 경제발전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게 될 거라고 했는데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어서도 여전히 잘 사는 사람만 잘 산다. 북한이 쳐들어온다, 북한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던 주장은 이제 북한 자리에 중국이 들어갔다. 그 트랜지션이 너무나 스무스해서 언제 어떻게 북한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차피 분노에서 기인한 영화 시나리오는 팔지도 못했으니, 이제 내면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나의 어두움에 돋보기를 대보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계속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그렇게 첫 시나리오를 썼지만,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까지 창피를 당했거나 남에게 들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창피함을 느꼈던 순간들을 모조리 다 기억하고 있다. 우울증이 걸릴 수 밖에 없는 타고난 천성이다. 더이상 창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나라는 인간이 기능하는 이유처럼 살고있다. 허세를 부리는 내 모습이 싫고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느꼈던 수치심이 너무 강했기에 아예 돈에서 멀어진 생활을 한다거나, 지적허영심을 부리는 내 모습이 역겨워서 지금껏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떠들었던 것들을 다 기억해두고 있다가 전부 보고, 읽고, 공부했다. 이런 사람이다보니 스스로의 창피한 기억을 더듬는게 고통스럽다. 길을 가다가도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몸서리 치면서 길거리에서 욕을 뱉는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을 잘 못하겠는 이유다. 스스로의 찌질함을 마주하기란 너무 고통스럽다.


지금까지 썼던 것들을 소설로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써보겠다는 한 편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다. 쓰면 쓸수록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인 것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뭐가 되보려는, 뭔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림을 그려도, 운동을 해도, 책을 써도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나오니 돈벌이가 안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인간임을 직시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영화는 운이 좋게 돈을 벌었지만 그건 시장 상황이 좋을 때였으니 가능했다. 이젠 그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피겨를 한 기간보다 훨씬 오랜 삶을 피겨선수가 아닌 신분으로 살아가는 김연아처럼.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변변치 않은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창피함을 못 견디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변변찮은 존재였다면 애초에 창피할게 없잖아. 오해가 아니니까.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기대가 있기에 실망이 있는 것.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창피한 것.

오해라고 생각하기에 억울한 것.


이도저도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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