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관한 잡생각

by Renaissance

최근 들어 게임을 즐기고 있다. 플스5가 나오자 어릴 적 친구가 나에게 플스4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게임도 하지 않으면서 궁금한 마음에 가져왔다. 어릴 적 부모님은 패미콤 딱 하나만 사주고 그 외 어떤 콘솔 게임기도 사주지 않으셨다. 대전격투류 게임을 좋아했던 나는 사무라이 쇼다운, 아랑전설, 킹오브파이터즈, 용호의권 등 대전격투 게임의 명가 SNK가 내놓은 네오지오를 무척 사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철권이 나온 후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림없었다. 그래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부잣집 아이들의 상징과도 같던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소유해보고 싶었다. 철권7만 조금 하다가 방치되고 있던 플스4를 다시 켠 건 최근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정리해보려 한다.


1. 나이에 따른 취미의 변화

게임을 원래부터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즐기던 게임을 성인이 되고 하지 않게 된 건 세상엔 너무 재밌는 게 많아서였다. 게임을 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니 게임을 할 리가. 봐야 할 책도 많고 영화도 많고, 안 해본 액티비티가 수백 개요 하고 있는 액티비티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 와중에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 취직 준비도 했으니 대학생 시절 술 마시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플스방에서 위닝을 했던 것 말고 게임에 아예 손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철권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와도 해볼 생각도 안 했다. 그만큼 시간이 모자랐고, 게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나이가 불혹(이라고 쓰고 39라고 읽는다)이 되자 삶에서 액티비티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 전혀 두려움이 없던 내가 새로운 액티비티에 전혀 도전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이 생경하기만 하다. 절대적 에너지가 줄어드니 일상을 보내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충분히 다 쓰인다. 아니, 일상을 지키기 위해 쓸 에너지도 부족하다. 그래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책만 보는, 청년 시절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다 좋은 기회를 얻어 영화 연출건이 잡히고, 캐스팅에 들어가는데 영화시장이 말이 아니니 진행이 더뎠다. 캐스팅이 되지 않으면 시간적 여유가 넘치지만 만약에 된다고 하면 당장 일에 투입되어야 하는 기묘한 나날이 계속되자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불면증은 심해지고, 이 초조함 때문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는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겜돌이가 되었다. 오호 놀라워라. 게임을 뭔 재미로 하냐고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던 모든 겜돌이 친구들에게 이 글을 빌려 사죄드리는 바이다.


2. 혼자 하는 게임, 같이하는 게임

기본적으로 경쟁을 싫어하고 이왕 경쟁을 할 거면 이기고 싶은 성향 때문에 같이 하는 게임을 잘하지 않는다. 대전격투게임을 좋아했던 것은 내가 잘하기도 했고 기껏해야 한 사람만 이기면 되는 게임이니까. MMORPG, FPS, AOS 같은 다수와 경쟁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은 영 성미와 맞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 게임 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온라인 경쟁 게임을 한다. 하루라도 게임에 접속하지 않으면 자신이 도태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라인 경쟁 게임은 끝이라는게 딱히 없다. 리니지는 여전히 인기게임이다. 온라인 경쟁에 관심이 없는 나는 철저한 오프라인 게임을 하기로 했다. 플스도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라는 유료 서비스가 있어서 대부분의 게임이 온라인 모드를 지원하지만 나는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3. 오픈월드, 달성목록

게임을 잘 아는 친구들에게 추천받아 이 게임, 저 게임 해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특성은 명확했다. 오픈월드이거나, 달성해야 하는 과제가 많거나. 메인 스토리만 주욱 따라가면 끝이 나는 영화구조를 가진 게임은 그다지 재밌지가 않았다. 물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게임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영화 같기 때문에 한번 끝나면 다시 플레이하고 싶지 않다. 레드데드리뎀션2를 추천받아 플레이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한 달 넘게 게임을 했다. 혼자서 하는 콘솔 게임을 한 달 넘게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세계관이 방대하고 달성해야 하는 목록이 매우 많아서 스토리 자체는 짧지만 플레이하다 보니 끝이 없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 내 달성목록과 별개로 플레이스테이션 달성 목록, 트로피가 따로 존재하는데, 엔딩을 보고 나서도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는 오픈월드형 게임인 레드데드리뎀션은 모든 달성 목록을 완료하기 나니 마지막 트로피를 줬다. 각 트로피는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그 트로피를 얻었는지 희소성을 알 수 있는데, 내가 받은 마지막 트로피의 희소성은 무려 0.1%였다. 게임 내의 모든 달성목록을 완료한 사람이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 중 0.1%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중에 한 명이 나야... 게임을 잘하지도 않던 나...


4. 콘솔 게임, PC 게임

우리나라는 PC 게임 시장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전 세계 시장을 보면 콘솔 게임 시장이 훨씬 더 크다. 온라인 게임만으로 돈이 되는 시장이다 보니 게임 업체들이 콘솔 게임 제작에 뛰어들지 않는다. 내가 많은 게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플레이했던 콘솔 게임들의 스토리는 매우 훌륭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다. 대형 게임의 경우 시나리오에 영화 작가들이 참여한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들어가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영화 작가를 고용하지 않았을 리가. 제일 잘할 사람들인데. 또 궁금해져서 게임업체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우리나라는 왜 영화 작가를 게임 개발에 참여시키지 않느냐고. 답은 간단했다. 온라인 게임은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단다. 우리나라 게임회사는 콘솔 게임 개발에 관심도 없다. 그 지인은 한국에서 가장 큰 게임회사 중 하나에 다닌다. 잘 만든 콘솔게임은 천만 장 단위로 팔리는데 회사는 관심도 없어하니 본인도 안타깝다고.


5. 게이머들의 매너

달성목록 100프로를 달성하기 위해 팁을 찾아봤다. 최대한 스포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궁금한 것만 찾기 위해 최대한 명확하게 검색어를 넣었는데 단 한 번도 스포를 당한 적이 없다. 영화계에 있는 나는 이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영화는 개봉일에 전체 스토리 스포가 올라온다. 포털 사이트 별점 리뷰에서 엔딩을 스포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영화 커뮤니티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스포가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별반 다를 바 없이 스포가 난무한다. 그래서 게임 커뮤니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매너가 좋은 커뮤니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달 넘게 게임을 하면서, 수많은 질문을 했지만 단 한 번의 스포가 없다니.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매너가 좋은 걸까 생각하다가 영화와의 차이점 때문일 거라 결론 내렸다. 영화는 두 시간만 쓰면 엔딩을 볼 수 있다. 게임은 나처럼 하나의 게임을 한 달 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스포를 당하면 한 달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에 더더욱 조심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엔딩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임들이 있고, 반전이 모든 것인 게임도 있어서 다른 이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위대한 영화를 즐길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게임 못지않게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소수이니 내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로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절 자신의 피드에 영화 스포를 올린 사람은 무조건 차단을 박았는데, 그런 친구의 수가 너무 많아서 집단 전체가 날아간 적도 있다. 게이머들,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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