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카라마조프까지

by Renaissance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다. 훌륭한 인물의 일대기나 자서전에는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마치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은 절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문자보다 그림을 선호했고 펜보다 크레파스를 먼저 잡은 나 같은 인간은 절대 위인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대학에 가고 나서 책을 읽기 위해, 유명한 문학작품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 난 대학에 가고 나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인이 되기엔 글러먹었지.


유명한 문학작품 중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포기한 작품이 많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죄와벌]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은 지식인이 항상 인용하는 작품이기에 반드시 읽고 싶었다. 의무감에 도전해도 다 읽지 못했다. 난이도로 치면 더 어려울 수 있는 괴테의 [파우스트]도 다 읽었는데 [죄와벌]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문체가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스토리는 진행될 생각이 없고 갑자기 튀어나온 등장인물이 주인공과 대화를 하면 한 호흡에 페이지 30장을 넘는 독백을 이어간다. 의무감은 계속 가슴속에 남아있었고, 장강명 작가의 최신작 [재수사]를 읽는데 [죄와벌]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9세에 [죄와벌]을 다시 도전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재밌는 게 아닌가!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해 재미를 못 느끼던 작품이 나이가 들어 재밌어지는 경우는 흔하다. [화양연화]가 그 대표작인 것 같은데 20대에는 영화의 위대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중경삼림]만 재밌고 심지어 그 작품조차도 과대평가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대에 들어 다시 본 [화양연화]는 일생일대의 명작이요 영화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작품이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아이즈 와이드 셧]을 이해하게 된 것은 30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VHS 세대라 여섯 살 때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기에 30세 즈음에 그 정도의 영화적 깊이가 생긴 것이다. 칸느 수상작들이 재밌고 거장들의 영화를 찾아보게 된 것이 39세가 아니라 30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장르에 갇힌 틀에 박힌 작품들만 보다 보면 그것을 깬 작품, 그것을 넘어선 작품을 찾게 된다. 영화를 많이 보면 그런 욕구가 당연하게 생기는 것이다. 거장들의 작품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거나, 장르를 가지고 논다. 특별히 감수성을 타고나지 않으면 대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술영화를 보게 된다. 내가 왜 불혹을 앞두고서야 [죄와벌]을 재밌게 읽을 정도의 문학적 깊이를 가지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필독도서라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필독도서 목록을 보면 답이 없다.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면 재밌게 읽을 수 없는 작품들을 필독도서라고 권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이문열의 [삼국지] 열풍이 불었는데 초등학생 필독도서로 꼽혔다. 하지만 책에는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 했고 한 페이지의 반이 한자어였다. 물론 김대중 정부의 한글 정책으로 인해 다행스럽게도 한글 병행표기를 해주어서 읽을 수는 있었는데 읽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 여전히 [삼국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처음 접한 삼국지가 너무 어려워서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게임과 만화로 재창작된 작품도 나는 흥미가 없었다. 다른 필독도서는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대문호의 작품들이 많았다. 이게 초등학생, 중학생이 읽어야 할 도서라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내 나이에 읽어야 한다는 책들이 죄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들어서야 책을 읽었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문학 작품에 도전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소설 열풍이 불었다. 일본의 장르 소설이 베스트셀러를 모조리 석권해 버린 시절이 있었다. 한국 서점의 매대에 일본 소설만 깔려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유는 자명했다. 쉬우니까. 어려운 단어가 나오지 않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장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훅 읽혔다. 특히 가네시로 카즈키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싹 다 섭렵하고 언제 새로운 책이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일본 장르 소설이 너무 인기가 많게 되자 한국 문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이러다 일본에게 문학계를 먹히게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 장르 소설은 한국 문학계에서 천대받던 시장이다. 문학적 깊이가 없다며 등한시하다가 일본 소설에게 모든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고 나니 변화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등단' 시스템이 한국 문학계 발목을 잡았다. 문학상을 타서 등단을 하지 않으면 작가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등단을 하기 위해선 문학적으로 깊이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 심사위원 취향에 맞지 않는 작가는 영원히 등단을 못 하는 거다. 문학계에서 인정받는 소수의 작가가 심사위원을 맡으니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가를 하지 못하는 기이한 시스템인 것이다. 일본 소설이라는 핵폭탄을 맞게 된 한국 문학계는 이제야 장르 소설에 가까운 작품에 문학상을 주게 된다. 박민규, 천명관, 정유정, 장강명 등 장르소설의 대가들이 문학계에 등단하여 한국 장르소설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은 모두 등단 작가이다. 한국 문학계는 여전히 등단 시스템을 버리지 못했다. 방송국 예능국이 폐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공채 기수를 따지는 코미디언 들처럼.


무엇이든 읽다 보면 깊이가 생기게 되고 그러면 더 어려운 작품을 찾게 되는 게 정상적인 프로세스가 아닐까 한다. 나는 늦게 책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39세가 되어서야 [죄와벌]을 재밌게 읽었고, 불혹이 되어서야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재밌게 독서를 했다면, 장르 소설을 많이 접했다면 이렇게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깊이가 생겼을까. 심지어 나는 글로, 시나리오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현세대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필독도서고 뭐고 판타지물이든 라이트노벨이든 본인에게 재밌는 글을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읽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나간 시절을 잃어버린 척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