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오래 쓰는 편이다. 가전제품이든 옷이든 한번 사면 보관을 잘하는 편이다. 애지중지해서라기보다 막 쓰지 않아서 인 듯하다. 천성이 과소비를 못하고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쓸만한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때 사용하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통칭하여 워크맨이라 부르는 물건. Z세대를 위한 부가 설명을 하자면 워크맨은 소니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내면서 붙인 브랜드 이름이다)를 고등학교 때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사기 전까지 사용했고, 그 CD플레이어는 대학교 때 MP3 플레이어를 사기 전까지 사용했다. 고장 나서 바꾼 적은 없다. 그래서 여전히 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를 가지고 있고 가끔 추억팔이 겸 틀어보곤 한다. 잘 동작하는 것은 물론이다. 카세트테이프가 더 이상 출시가 되지가 않자 CD플레이어를 샀던 거고, MP3 광풍이 불면서 레코드샵이 대부분 문을 닫은 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외국 뮤지션의 CD는 출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MP3 플레이어를 샀던 거다. 필요에 의한 소비만 하다 보니 나는 좋게 말하면 레트로 마니아가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구두쇠 영감탱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가 되었다.
구글에서 레퍼런스 제품으로 픽셀이라는 핸드폰을 내고 있는데 전에는 넥서스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태블릿 제품도 냈는데 그 첫 작품이 넥서스7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7인치 디스플레이를 가진 아주 작은 휴대용 태블릿 제품이었는데 당시 아이패드가 태블릿 시장을 석권하던 시기라 너도나도 태블릿을 출시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태블릿 제품을 한번 써보고자 하시는데 아이패드는 너무 비싸니 구글의 넥서스7을 사셨다. 아들은 태블릿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시기의 일이다. 시간이 흘러 넥서스7이 너무 느려져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 아버지는 때마침 아이패드 미니를 선물 받으셨다. 넥서스7이 필요가 없어진 아버지는 나에게 써보겠느냐 하셨고, 옳다구나 가지고 왔다. 너무나 느렸기 때문에 운영체제를 다운그레이드해서 사용했고, 쓰다 보니 역시나 나에겐 태블릿이 별 필요가 없었다. 학교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용도,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를 읽는 용도로만 사용하다 보니 운영체제를 더 다운그레이드해도 상관없겠다 싶었지만 이전 OS는 전자도서관 앱이 깔리지가 않더라. 영화 작업 때문에 펜을 사용할 수 있는 커다란 태블릿이 필요했던 내게 친구가 아이패드 프로 12를 빌려줬고, 원래 태블릿은 이런 속도구나 하면서 신나게 사용했지만 책을 읽을 때는 넥서스7을 굳이 사용했다. 관성이라는 게 무서워서 아이패드 프로 12를 들고 무언가를 읽으면 책을 읽는 느낌이 나지 않고 웹서핑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자고로 한 손에 들고 읽어야 제맛, 넥서스7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대체품을 찾아볼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낡아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배우들이나 동료 감독을 만나 태블릿을 꺼내면 당근에서 워크맨을 사서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힙스터 취급을 받는 게 싫었다. 하지만 태블릿은 스마트폰과 더불어 점점 크기가 커져가는 추세고, 화면 크기가 작은 태블릿은 폴더블 폰 때문에 시장이 없어졌다. 핸드폰은 무조건 작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폰 미니를 쓰고 있는 내가, 더 이상 미니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다음 폰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폴더블 폰을 들고 다니는 건 어불성설이다. 넥서스 7은 수명이 완전히 다하는 그날까지 나의 리딩 기기가 될 것 같다.
물건을 오래 써서 좋은 점을 꼽자면 유행은 돌고 돈다는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입은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기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옷 관리를 잘해서인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옷은 핏이나 디자인이 요즘 입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다. 옷 관리 철칙 중 하나는 집에서 입는 옷과 밖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는 것이다. 집에서 입는 순간, 잠옷이 되는 순간 옷은 생명이 끝난다. 그래서 입지 않고 옷장에만 보관하고 있는 옷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사를 하면서 커다란 트렁크 두 개 정도를 버렸는데 옷 상태가 너무 좋아서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버리고 나서 남은 옷들도 버려야할게 여전히 많다. 그런데 웬걸, 레트로 열풍이 거세졌네? 뉴진스가 2000년대 초반 옷을 입고 나오네? 그렇게 옷장에서 부활하여 입고 다니는 옷이 많다. 빈티지 샵에 갈 필요가 뭐가 있나, 내 옷장이 빈티지 샵인데. 대학교 1학년때 산 리바이스 청바지, 고등학교 때 산 폴로 셔츠, 중학교 때 산 건빵바지까지 다시금 햇빛을 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단지 오래도록 버텨준 덕에. 하지만 감상에 젖을 것 없이 그냥 다 버렸어도 빈티지에서 새로 사면 될 일이다. 단지 물건을 오래 쓰는 내가 그것의 장점만 굳이 보려고 해서지 못 버리는 건 그냥 성격적 결함, 단점일 뿐이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쓸 일은 반드시 생긴다. 그건 내가 경험에서 터득한 진리다. 하지만 쓸 일이 생기길 기다리며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중에 필요한 게 생겼을 때 사는 것이 낫다. 알면서도 안 고쳐지는 걸 어떡해.
오래된 물건에 갖는 애착은 유별난데가 있어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방송에서 틀어준 영화와 가요프로그램을 녹화했던 VHS 테이프를 보겠다고 당근과 중고나라를 뒤져 비디오 플레이어를 샀다. 가끔씩 보는데 내가 어렸을 때 어떤 것에 관심을 두었는지 보는 재미가 있어서 한번 틀면 멈추질 못한다. VHS는 DVD의 등장으로 사장된 기술이다. DVD는 블루레이의 등장으로 사장됐다. 그리고 이제 플래시 메모리가 모든 저장장치를 대체하고 있다. 영상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난 것이다. 그게 못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버린 기술이니까. 사람들이 계속 VHS를 샀다면 없어지지 않을 기술이었다. 그것을 버린 건 우리다. MP3의 편리함 때문에 카세트 플레이어와 CD를 버려놓고 이제 와서 웃돈을 주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는 건 어찌 보면 웃기고 기괴한 일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만 접한 세대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저장장치의 소유를 경험해보고 싶은 것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나에겐 추억이지만 그들에겐 이전에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다. LP와 카세트의 부활은 20대가 견인했다. 뉴진스의 뮤직비디오에 miniDV 캠코더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저게 캠코더 화면인 것도 모를 텐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들이 오히려 나보다 잘 알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VHS와 함께 자란 세대가 비디오 플레이어 매뉴얼을 읽어본 적이 있겠나. 지금 젊은 세대가 미니디브이 캠코더의 기능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기성세대가 버린 기술을 신진세대가 다시 부활시키는 광경을 보며 아이러니 같다가도 씁쓸한 현세태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세대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직선으로 널따란 길이 주욱 뻗어있다. 이곳의 명칭은 백양로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백양로에 차가 다녔다. 왕복 2차선 도로였는데 백양로가 워낙 넓다 보니 양 옆으로 인도가 크게 있어 전혀 불편할 것이 없었다. 은행나무가 양 옆으로 주욱 심어져 있어 단풍이 지면 절경이지만 냄새 또한 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백양로 지하화 사업을 학교가 진행하면서 백양로를 전면 리모델링 했고, 지하에 도로와 쇼핑몰을 짓는 대신 백양로는 전면 인도화 하였다. 불편할 것이 없었는데 바꾼 것이다. 옷이 멀쩡한데 유행이 지나 바꾸듯, VHS 대신 DVD를 쓰듯, 현대화한다는 명목이었으리라. 예전의 백양로가 너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시나리오 자료조사를 하면서 백양로가 원래는 백양나무가 많아서 백양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백양나무가 울창하던 시절 백양로를 걸었던 사람은 학교가 백양로를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차가 통행할 수 있게 만드려고 백양나무를 싹 베고 아스팔트를 깔았던 것에 울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차가 다니게 된 백양로를 걸어 다니던 나는 아스팔트 도로를 없앤 백양로를 보면서 가짜 백양로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양로' 이름의 유래도 모른 채로.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버린 것들이다. 잃어버린 나의 추억을 돌려달라며 떼쓸 것이 아니라 버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 이제는 잘 쓰이지도 않는 꼰대의 상징 '나 때는 말이야'는 내가 살던 시절이 더 좋았다는 가정에서 하는 말이다. 너희들은 그걸 모르지, 라며 약 올리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경험해 보았다는 우쭐함이다. 하지만 그것을 없앤 건 당신들이고 우리들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다. 선배들이 백양나무를 지키지 못했듯 우린 아스팔트 도로를 지키지 못했다. VHS를 지키지 못했고 카세트테이프를 지키지 못했다. 우리가 버렸으니까. 지나간 것을 잃어버린 척하지 말자. 간수만 잘했으면 언제고 새로운 유행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량 통행을 위해 백양나무를 베었다가 다시 인도로 만들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