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곰팡이

by Renaissance

평균 습도가 80%가 넘는 곳에서 살아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40년 된 구옥이 그런 집이었다. 찝찝한 느낌이 문제가 아니다. 높은 습도가 어느 기간 이상 유지되면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곰팡이는 한번 피면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자란다. 해당 부위를 뜯어내서 바싹 말린 후 항균 처리를 해야 한다. 습도가 높은 날이 계속되니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 집에서 산 습도계만 몇 개인지. 현재 집 습도는 계속되는 장마로 75% 정도 된다. 나는 경험적으로 2주일을 한계선으로 잡고 있다. 2주 이상 습도가 80% 이상이면 곰팡이가 핀다고 가정하면서 산다는 뜻이다.


습도를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습기를 사용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제습기의 단점이 한 두 개가 아닌지라. 제습기는 열을 발생시킨다. 여름엔 에어컨과 같이 틀어야 한다. 제습용량의 한계도 명백하여 각 방마다 제습기를 두어야 한다. 물이 차면 버려줘야 하고 물통도 자주 깨진다.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하나 장만하는 순간 일이 늘어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습도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집을 고르고 싶었고, 그 조건은 간단 명백하다. 첫째, 남향일 것. 둘째, 공기 순환이 수월할 것.


습기 말리는 데는 햇빛만 한 게 없다. 습도가 아무리 높아도 빛이 잘 드는 남향집은 해 좋은 날 습도가 뚝뚝 내려간다. 80% 이상 습도가 '계속' 유지되면 곰팡이가 피는데, 그 '계속'을 햇빛이 끊어주는 거다. 그래서 남향집은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물론 단열이 불량인 집은 겨울에 온도차 때문에 결로가 생기고 곰팡이가 핀다. 겨울에 곰팡이가 피는 곳은 다른 거 할게 아니라 단열 작업을 해야 한다. 베란다에 탄성코트를 시공하면 결로가 흘러내려서 곰팡이가 안 생긴다고 사기 치는데 단열이 불량이면 소용없다. 탄성코트조차 떨어져 나간다. 단열 작업을 한 후 탄성코트를 하는 게 순서지 탄성코트만 바른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참고하시고, 다시 습도 얘기로 돌아오면, 남향이어도 앞에 건물이 햇빛을 막으면 무용지물이다.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는 햇빛이 가장 오래 집에 들기 때문이다. 그걸 특정 건물의 그림자로 가로막히면 남향이 무슨 소용인가. 북유럽 국가는 가구 상한다고 남향집을 선호하지 않는다는데, 그럴만하다. 거긴 건조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향집을 선호하는 건 이 습도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햇빛에 가구가 상해봤자 곰팡이보다 심하게 상할까. 해가 잘 드는 집은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터득했으리라.


공기 순환의 경우 햇빛보다 중요성이 인지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 모두가 선호하는 '아파트'의 구조를 보면 앞 베란다의 창문과 뒷 베란다의 창문이 일렬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 베란다(메인 베란다)의 반대편엔 보통 주방이 있고, 그 주방엔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 사는 집은 특이하게 뒷베란다가 주방까지 이어져 있어 앞 베란다와 뒷 베란다의 통창이 마주 보는 구조다. 두 창문을 모두 열면 바람이 시워어어어어언하게 집을 통과한다. 흐린 날에도 바람이 잘 부는 날은 습도계 숫자가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 장점이 이렇게도 명백한데 대부분의 아파트는 전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방마다 공기 청정기를 틀어놓고 24시간 돌리는 것보다 앞뒤 통창으로 집 전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게 훨씬 빠를 텐데.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은 전자의 구조이고, 꼭대기 층에 사시는 데다 커튼도 사용 안 하시는지라 햇빛은 매우 잘 들지만, 옷장에 곰팡이가 폈다고 한다. 제습제를 꼭 사라고 충고드리면서 환기의 중요성을 알려드렸다. 전자의 구조에 사는 분들이나, 햇빛과 공기순환이 모두 좋지 않은 집에 사는 분들은 옷장에 반드시 제습제를 넣으시길. 참고로 나는 40년 된 구옥에 살 때 여름 내내 옷장을 열어두었다.


곰팡이와의 사투를 4년간 벌였던 탓에 그때 쌓은 노하우로 지금 집은 곰팡이 프리 상태다. 힘들었던 만큼 배운 것도 많다. 보일러 문제도 결국 내가 고쳤다. 벌레와의 전쟁, 곰팡이와의 사투, 보일러, 추위 등등 온갖 고생을 하며 사는 나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그런 말을 했었다. 40년 된 구옥에 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었다. 풍족한 사람은 평생 알 필요 없는 이런 것들을 지식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냐고. 하지만 결국 그 경험들이 지금 삶을 더 쾌적하게 사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내가 영화계에서 겪은 수많은 불공정 사례와 비인간적인 인간들로부터 얻은 경험이 나의 앞날에 도움이 되길 빈다. 다신 보지 말자. 이 곰팡이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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