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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였으면 좋겠다

by Renaissance

MBTI로 제목 어그로를 끌었지만 난 MBTI를 믿지 않는다. 외향적인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쓰는 게 심심해서 저렇게 써보았다. 어렸을 땐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주변엔 항상 사람이 넘쳐났고 그들이 불러주면 내가 응하니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나이를 먹고 나서 알았지만 나는 부르는 것에 응답한 하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잡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변인들과 연락을 하고 관계가 느슨해지지 않을 적정의 타이밍을 잡아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더라.


남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나의 문제점을 깨닫고 나서 내가 바뀌었을까? 전혀 바뀌지 않았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으며 이젠 먼저 연락할 때 뭐라고 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모두가 불러대서 바빴을 때,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 얄미웠다. 지금은 필요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안부 인사를 보내는 사람이 이상하다. 왜지? 왜 연락하는 거지? 저의가 있나? 문제점을 안다고 바꿀 수 있었으면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회사 다니던 시절의 짬밥으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한다. 이걸 반대로 얘기하면 절대로 개인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친구 사이에도 지킬 예의가 있다'라는 말을 풀어서 생각하면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차려야 할 예의가 적어진다는 뜻이다.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는 사람은 나와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이다. 비즈니스로 만나더라도 개인적인 친분을 트고 술자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이러한 네트워킹이 빛을 발하는 건 문제가 생긴 것을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해결할 때이다. 나는 모든 선을 다 지키면서 사람을 만나니, 내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무언가를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내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 세 명 정도 될 거다. 내가 연락을 하는 사람은 세 명 정도 되니까.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제작사나 투배사 관계자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작가, 감독과 나처럼 외딴섬처럼 사는 사람 중 누가 더 의뢰를 많이 받을지는 말해 뭐해다. 영화계 굵직한 감독님들은 배우분들과 매우 친한 사이를 유지한다고 한다.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직접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도 연락을 뜨문뜨문하게 하는 나로서는 내가 큰 작품을 하게 된다고 해서 갑자기 대선배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네트워킹의 신 같은 친구가 온갖 종류의 사람이 열 명 넘게 모인 자리에 자꾸 초대하던 시절이 있다. 나도 네트워킹을 해보라는 거였는데 조용히 앉아서 술만 마시다 집에 왔다. 이게 반복되니 내 친구도 더 이상 사람이 많을 때 나를 부르지 않는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존경하는 위대한 철학자 니체와 화가 고흐는 평생 외톨이 신세였다. 사후 불멸의 존재가 되었지만 이들이 네트워킹을 잘했으면 살아 있을 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천재였기 때문에 외톨이였을 수 있지만, 나는 천재도 아닌데 왜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해가는가. 영화에서 주인공은 2막 마지막에 그 어려운 '변화'라는 것을 한다. 인간이 변한다는 건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판타지라는 얘기다. 부처의 뜻은 '깨달은 자'다. 깨달아서 변했기 때문에(성불) 부처가 된 것이다. 야 너두 부처가 될 수 있어. 변할 수만 있다면.


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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