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세 명은 구했다

by Renaissance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동기들이었다. 공채를 통해 광고대행사에 입사했고, 우리나라 광고대행사는 대부분 인하우스라 모그룹의 연수를 받게 된다. 그런 시스템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동시에 입사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똑같은 시기에 입사하여 부당한 체계에 대해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같이 욕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광고계를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때의 입사동기들과 연락을 한다. 군대 인맥은 제대하자마자 손절을 쳤고, 대학교 인맥은 동아리 친구 몇 명만 남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회사 동기는 꽤나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막막했기에 학교에 들어가야겠다 생각했고, MFA 과정에 들어가 영화하던 친구들을 만났다. '나 영화 할래' 하고 마음먹고 스마트폰과 dslr로 단편영화를 찍고 장편 시나리오를 혼자 써서 학교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학부에서 영화 전공을 했거나, 영화 동아리를 했거나, 영화판에서 스태프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입학하자마자 학교 극장에 모여 입시에 낸 단편영화를 한꺼번에 틀어줄 때 내 영화 순서에서 미치도록 부끄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다른 이들의 영화와 다르게 내 영화는 믹싱이 되지 않아 사운드가 처참했고, 스태프가 나밖에 없던 터라 초점이 안 맞는 컷들도 많았다. 하지만 많은 단편 영화를 봐온 동기들은 그런 것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더 집중했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면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그다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성도는 높은데 영화의 방향이 모호한 작품들에 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뒤풀이 자리에서 동기들 영화 중 내 영화가 가장 재밌었다고 평가한 사람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나도 그 사람이 만든 영화가 제일 재밌었다. 서로의 영화에 호감을 가진 상태니 이 컷은 어떤 의도였고 내가 해석한 게 맞느냐, 이 음악 너무 좋더라, 이 배우 연기 괜찮더라 등 불과 10분 남짓한 단편을 가지고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람과는 서로의 단편에 도움을 줘가며 인연을 이어나갔고, 공교롭게 내가 먼저 학교의 지원을 받아 장편을 찍게 됐고, 그가 2년 후 같은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장편을 찍게 돼 동기 중 가장 먼저 우리 두 사람이 장편에 입봉 하게 되었다. 서로의 장편영화에 도움을 주고받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원 과정을 알아보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존재를 알게 되어 무작정 지원을 했다가 운 좋게 붙어서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그리고 필기시험장에서 회사에서 딱 한번 같이 일했던 제작팀 사람을 만났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그 자리에서 만난 게 너무 신기해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분은 오래전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시험도 벌써 세 번째라고. 결과적으로 그분은 붙고 나는 떨어졌지만 그분의 조언대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분의 영화가 너무 궁금해서 그분의 졸업영화제에 찾아갔고, 내 단편이 영화제에 나갔을 때는 그분이 찾아오셨다. 영화제 뒤풀이에 위에 언급한 학교 동기가 왔고, 공교롭게 그 동기가 회사 제작팀 사람과 동갑이었다. 두 분 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다. 한국에서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유대가 생긴다는 의미이고, 두 분은 나 없이 자주 볼 정도로 친해졌다. 회사 제작팀 분은 내가 장편을 찍은 다음 연도에 KAFA 장편과정에 합격하여 장편을 찍게 되었다. 우리 셋은 공교롭게 1년 텀을 두고 한 사람씩 장편에 입봉 하였고, 비슷한 나이와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영화를 하는 특수한 경력 때문에 영화 동료가 되었다.


학부에서도 영화를 전공하고 이미 칸을 다녀온 적이 있는 천재 감독이 대학원 동기 중에 있었는데, 단편 작업을 계속하다가 졸업영화로 또 칸을 갔다. 나이가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이 친구는 나이차 때문에 가깝게 지내지 못하다가, 이 친구가 30대가 되고 저예산 장편을 찍고 영화판에서 구르다 보니 우리와 심적으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어느덧 그 친구는 내가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의 나이가 되었고, 그 나이가 되니 우리 셋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 것 있지 않나. 대학교 때 회사에 들어간 선배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왜 저렇게 살까 생각하다가 본인이 회사를 가고 나면 선배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거. 그렇게 우리 넷은 영화 동료가 되었다.


동료가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어제 오래간만에 모여 회포를 풀었는데 영화계가 어려우니 다 같이 절망적이고, 다들 갑질을 당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같이 회사 욕을 했던 동기들처럼 우린 어떻게 현 상황을 타파할지 고민하고 욕하고 떠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장편에 입봉 했으니 내가 상업영화에 입봉 하면 자기들에게도 순서가 올 것이라고, 내가 뚫어줘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실제로 상업영화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이 프로젝트가 좌초되지 않고 캐스팅이 된다면 그게 가능해지기 때문에 응원을 가장한 농담이었다. 현재 영화계 상태로는 영화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고, 모두 깜깜한 미래를 보며 갑갑하겠지만 계속해보자는 으쌰으쌰 분위기. 나 혼자 까만 방에 있으면 막막하지만 내 옆에 누군가가 같이 그 어두컴컴함을 보고 있다면 안심이 된다. 같이 벽을 더듬어 어딘가 한줄기 빛이 보이지 않을까 찾는다. 모두 섬세하고 여리지만 내가 가장 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러지 말아야지 반성도 된다. 만약에 우리가 모두 상업을 하게 된다면 한국 영화계가 세대교체에 힘을 쓴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내 동료들은 나보다는 긍정적인 것 같다. 역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영화계 들어와 동료 세 명은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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