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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Aug 27. 2023

한번 더 주어진 삶

이미 죽었어야 할 인간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인류의 평균 수명은 40세였다. 지금으로서는 간단히 치료되는 병에 걸려도 죽었을 테고, 무균법은 비교적 최근에야 도입되었으니 상처 하나만 나도 치명적이었을 터라 어릴 때 죽은 사람이 많아 평균치가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포유류의 수명을 신체 크기와 맥박수로 계산하면 인간의 수명은 40세가 나오나고 한다. 인간은 영장류니 다를 수 있지 않나 싶지만 DNA 메틸화에 따른 포유류 수명 계산에서도 인간은 40년이 나온다. 모든 데이터가 인간의 자연 수명은 40년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39년을 살았다. 신체의 변화를 보면 내 수명이 다해가는 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체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침의 분비가 작아져 양치를 더 자주 해야 하고, 피부의 유분 배출이 달라져 클렌져와 로션을 바꿔야 하며, 두피 타입도 건조해져서 샴푸도 바꿔야 한다. 몸에서는 중년 냄새라고 부르는 이상한 향이 나기 시작하여 생전 쓰지 않은 데오도란트를 샀다. 예전보다 양치도, 샤워도, 세수도 자주 해야 한다는 소리다. 피부와 두피가 모두 건성이라 자주 씻으면 오히려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비듬이 생겼다. 클렌져는 거의 쓰지 않고 물 세수만 하였고 머리는 3일에 한번 감았다. 이 정도로 두피가 건조한 사람은 드물다 보니 대부분 머리를 매일 감았고, 3일에 한번 감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니 매일 감는다고 거짓말을 쳤다. 아무도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냄새도 나지 않고 머리가 떡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매일 클렌져로 세수하고 어떤 날은 머리를 아침저녁 두 번 감기도 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 사용하더라도 충분한 가동성을 이용하지 않는 근육은 굳어버린다. 스트레칭을 거의 하지 않고 격한 운동을 매일 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점점 운동 루틴에서 스트레칭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스트레칭을 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운동까지 생긴다. 광배와 손목이 굳어 랙포지션 자세가 안 나오고, 매일 운동 후 고관절 스트레칭을 해주지 않으면 스쾃 자세가 이상하다. 원래 하던 스트레칭 동작으로 부족해 새로운 스트레칭이 늘어만 간다. 고관절, 코어, 어깨만 하던 스트레칭에 발바닥, 발목, 손목, 광배가 추가되었고 아마 계속 늘어갈 것이다. 


사람마다 죽었어야 했는데 오래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특징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 나이 먹으니'라고 시작되는 저마다의 증상들. 동년배들이 모이면 서로 어떤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지 공유한다. 누구는 잇몸이 안 좋아져서 임플란트를 하고, 누구는 머리가 다 새어서 염색을 해야 하고, 누구는 디스크가 터져서 앉아있질 못하고, 누구는 혈당이 올라 당뇨약을 먹는다. 남자의 경우 대부분 탈모가 온다. 나이가 들면 디하이드로테스테론이 남성의 전립선을 크게 만들고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며 체모를 늘린다. 유전과 별개로 나이를 먹으면 겪게 되는 신체의 변화인 셈이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모두 내 주변 사례들이고,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니 훨씬 많은 증상들이 있을 것이다.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나는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 것이다. 자연 수명을 시즌1이라 하고 연장된 수명을 시즌2라고 하면 시즌1보다 훨씬 못한 시즌2가 될 것이다. 신체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 시즌2가 폭망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용을 알차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시즌1이 에피소드별로 60분 분량에 전개도 빠르고 등장인물과 사건도 많고 편집 속도도 빨랐다면, 시즌2는 30분 분량에 콘텐츠가 적고 느릴 테다. 이런 한계를 가지고 시즌2를 시즌1보다 재밌게 만들려면 스토리로 승부 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죽었어야 할 몸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 나머지 인생을 한번 더 주어진 기회로 생각하고 살자. 나에게 원코인이 더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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