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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Sep 11. 2023

사소한 변화의 나비효과

저스트 두 잇

역도짐을 등록했을 뿐이다. 근데 삶의 변화는 어마어마했다. 


첫 번째. 

나의 현 상황에 대한 인지가 바뀌었다.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언제라도 바빠질 수 있다는 허상과,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얽매여있는 것도 없으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일이 잡히면 그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을, 일이 없을 때에도 항상 일을 하는 것처럼 살았다. 역도를 위해 하루에 네 시간을 쓰게 되자 내가 얼마나 시간이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걱정 때문에 그 많은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루에 네 시간을 역도에 쓴다고 해서 내 영화 커리어가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다. 나 시간 진짜 많구나. 


두 번째.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던 시기의 느낌이 난다. 물론 그때보다 십 년 가까이 늙었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것에만 시간을 쓰던 시절의 느낌이 상기됐다. 올드카를 몰고 싶어서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오래된 차는 언제든지 고장 날 수 있으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려 4개월 동안 국가 지원 기술교육원 야간반을 다녔다. 정비소에 취직할게 아니라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정비를 배우는데 쓰는 게 맞나 싶겠지만, 그땐 시간이 남아돌았다. 지금 역도 다니는 것처럼 통학 시간도 도합 두 시간이었다. 정비기능사도 땄고 올드카도 몰았다. 그때 배운 지식덕에 편하게 몰았다. 실제로 차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뭐가 문제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마음 놓고 보험사를 불러 가까운 정비소로 견인해 이걸 손봐달라고 말했다. 과잉정비 걱정 없이 정비소를 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이점인지는 정비소에 가본 사람만 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몇십만 원이 깨지면 이게 맞는 건가 싶으니까. 역도도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내 미래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거 없다. 


그래서. 

실존주의자로 돌아온 기분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부조리다.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게 살고자 다짐한 게 2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상업영화감독이 된다는 허상에만 집착해 살고 있다. 언제 일을 맡게 될지 모르고 계약을 얼마에 하게 될지를 모르니 돈을 아끼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데, 역도를 시작하고 씀씀이가 커졌다. 열 번 고민하고 사지 않을 것을 두 번 고민하고 그냥 사버린다. 필요 없는 소비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죄책감 없는 소비를 하고 있다. '돈 떨어지면 벌면 되지 뭐,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생각을 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단 한 번도 끊어본 적 없는 마일리지 티켓도 끊었다. 마일리지가 소멸해도 어차피 그건 내 돈이 아니다, 없는 거라 생각하자, 넘겼는데 이번엔 그냥 질렀다. 직장도 안 다니는 사람이 마일리지 티켓 하나 끊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이걸 지금까지 못했을까. 


역도 체육관을 다니겠다는 사소한 다짐, 그 사소한 변화가 불러온 인식의 전환은 어마어마했다. 혼자 허상을 쫓으며 쓸데없이 열심히 살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 뒤통수를 날려줬으면 좋겠다. 챗GPT의 시대인데, 자동 뒤통수 로봇 같은 거 못 만드나. 변화를 줄 타이밍이라고 빡! 때려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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