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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Sep 12. 202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F를 딱히 선호하지 않고, 과학에 재능이 없어서인지 관심이 많지도 않았는데, 유튜브 시대에 더이상 흥미를 끄는 영상이 없어지자 과학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책으로 공부하라면 못했을 과학 이야기를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영상으로 접하니 이보다 재밌을 수 없었다. 원리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과학에 얽힌 스토리만 재밌어하는 것 같다.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긴다고 해서 입자와 파동에 대한 수식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천체에 관심이 생긴다고 해서 우주를 이루는 물질들의 화학식을 공부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토리만 즐긴다. 그러다보니 과학 소설도 재밌어한다. 그걸 일깨워준건 테드 창이었다. 


테드 창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마치 블랙홀에 휩쓸리듯 책을 다 읽었다. 바로 그의 다른 책을 보았고, 또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책은 세 권이 전부다. 인류를 위해 다작을 해줘야 할 작가님이 왜 이렇게 책을 안 내시는지. 단편만 쓰시는데, 장편도 좀 내주시면 안 되는지 팬의 입장에서 돌아버릴 것 같다. 장편 과학 소설 중에 재밌게 읽은 책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리즈 시절에 낸 책으로 인간종 탄생의 미스터리, 진화의 미싱 링크를 쫓는 추리물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나무' 이후로 내리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과 '파피용'까지는 읽었지만 이제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놓고 책이 나오면 조금씩 읽어보기는 했으니 완전 놓지는 못한 것 같지만. 과학 소설을 표방한 작품들이 재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동안 멀리하다가 테드 창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또 읽을만한 것이 없다가 발견한 책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SF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김초엽 작가가 테드 창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 없는 것 같다. 사실 테드 창 이후로 과학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은 모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정도로 세계적인 임팩트가 컸으니까. 김초엽 작가의 책이 재밌었던 것은 마치 테드 창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읽는 것 같아서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인류가 누리게될 세상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너무 맛깔나게 잘 풀어냈다. 예전에 대학 강단에서 SF 영화의 조건에 대해서 설명했던 적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기술의 시대를 현실적이면서 장엄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만이 SF가 아니라고. 그것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졸작이 나오는 거라고. SF야 말로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 그래서 SF 대작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이 모든 질문을 다 다루는 SF 대작이다. 그래비티는 인간의 존재의의, 삶의 목적(무엇)을 다룬다. 철학의 부재로 망한 SF영화 관계자들이 한국 관객들이 SF를 싫어한다는 소릴 하는데 박살난 메타인지를 수리하시길. 테드 창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기 힘든 분, 과학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분에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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