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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Oct 26. 2023

미각으로, 후각으로 촉발된 기억

인간은 오감 중 후각의 기억이 가장 선명하고 오래간다고 한다. 뇌에서 냄새를 처리하는 부분이 기억과 탐색을 관장하는 해마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고.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맡은 전 연인의 향수 냄새나 샴푸 냄새 때문에 갑자기 주저앉아 울어본 기억, 다들 있지않나? 나만 그렇다고 하면 너무 찌질하니까 다들 있다고 해줘... 더 찌질한 걸 말해주자면 나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연인의 낌새를 눈치채고 평소 뿌리던 향수를 더 진하게 뿌렸던 적이 있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시간이 흐른 후 어딘가에서 내 향수 냄새를 맡고 나와 헤어진걸 후회하길 바래서 그랬다. 세상 찌질할 수가 없다. 


나는 어렸을때 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찌질한 경험도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브런치이고, 내가 살았던 국가가 한국 사람들이 흔하게 사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감독 중에 그 국가에서 살았던 사람 하면 내가 특정되기 때문에 나라를 말하지는 않겠다. 이미 한국에 돌아온지 오래됐기 때문에 그 나라를 추억하기 힘들고 내가 살았던 곳의 뉴스나 예전 사진을 본다고 해서 감상에 젖어들기엔 너무 멀어졌다. 시각적인 정보는 이렇게나 힘이 없다. 


혼자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가서 살았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어머니는 지병도 있으셔서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을 그 나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추석 선물로 비행기표를 사드렸는데, 작년에 샀던 표를 여차저차 해서 여지껏 못 가다가 올해 추석이 지나서야 다녀오셨다. 한 달에 100에서 150만원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큰맘 먹고 사드린거다. 건강문제로 가지 못할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기에, 더 빨리 사드리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결국 잘 다녀오셨는데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빵을 사오셨다. 그 나라는 빵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만, 나라별 빵의 특성이 있지않나. 나에겐 그 나라의 빵이 디폴트값이다. 한국의 빵은 프랑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죄다 프랑스식이다. 어지간한 카페엔 다 크로와상과 바게트가 있지 않나. 크로크무슈도 그렇고. 예상을 해보자면 우리나라 제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일본이 프랑스식 디저트 문화를 좋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도 빵이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디저트 빵이 주류고, 우리 달디 단 디저트 빵이 많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빵은 밥으로 먹는게 아니라 디저트로 먹는다. 빵 얘기를 이렇게 자세히 할 건 아니었는데 말이 길어지고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건 다 추측이니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한국 빵의 기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다. 여튼 한국의 빵에 전혀 만족을 하지 못해서 전혀 먹지 않고 살고 있는데 부모님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빵이라는 것을 알고 빵을 사오셨다. 게다가 센스있게 치즈까지 사오셨다. 우리나라 치즈는 정말 맛이 연하다. 외국 치즈 제품도 많이 들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향이 강한 제품은 들어오지 않는다. 썩은내가 날 정도의 치즈를 수입해봤자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 바로 커피를 내려서 빵과 치즈를 입에 물었다. 한 순간에 예전 추억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미각으로 촉발된 기억이라니. 사실 미각보다는 빵의 향, 치즈 향에서 촉발되었을 거다. 그 나라에서만 살 수 있는 빵에서 나는 향. 빵이 주식인 나라는 그 나라만의 특성이 반드시 있다. 우리나라 쌀이 다른 나라 쌀과 구별되듯이. 


원래부터 개코였고, 향에 민감했기 때문에 외국에 갈 때마다 그나라를 기억할 수 있는 향을 사왔다. 베트남에서는 마사지샵에서 그들이 쓰는 오일을 사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어딜가나 피워놓는 힌두교 인센스 스틱을 사오는 식이다. 그 향을 쓸 때마다 여행의 기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반대도 똑같은데 안 좋은 기억의 여행지는 그 어떤 것도 사오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해당 나라에 관련된 향, 특히 음식을 주의한다. 군대를 워낙 싫어했고 안 좋은 기억만 가득하기 때문에 예비군이 끝나자마자 군복과 군화를 바로 버렸다. 예비군 때문에 군복을 입을때마다 그 향에서 촉발된 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웠다. 혹자는 군복을 왜 버리느냐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안 버리는 사람이 더 특이하다. 군 기억이 좋을 수가 있나. 2년간 갇혀서 외부와 단절된 채 죄수와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 장편 영화를 찍으면서는 정신이 없어서 현장의 향에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아마 여유가 있었다면 현장의 향을 컨트롤 했을 것이다. 주된 향기를 정해놓고 촬영할 때마다 그 향이 나게 했다면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그 향 만으로 영화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했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당신은 어떤 향이 가장 강렬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어떤 향을 맡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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