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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16. 2023

섬나라의 한계

사람이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환경의 범위가 넓어지면 의견이 나뉘기 시작한다. 대륙에 사는 사람과 섬에 사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를까? 몰디브 같이 작은 섬이라면 당연히 다를테지만, 호주같이 큰 섬이라면 차이가 있을까?


섬과 대륙의 차이점은 단순히 땅의 크기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국경을 맞댄 나라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있다. '해외'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비행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면 섬나라 사람일 것이다. 국경을 맞댄 나라가 있는 나라의 경우 '해외'에 자동으로 '비행기'를 떠올리지 않는다. 차로도 갈 수 있고 기차로도 갈 수 있는 곳이 해외이기 때문이다. 섬나라와 아닌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해외'에 대한 인식의 다름에서 나타난다. 이어져있다와 끊어져있다의 차이. 연결되어 있다와 고립되어 있다의 차이. 그게 그렇게 큰 차이일까? 뭐가 그렇게 다른가?


여기 10대 청소년이 있다. 자신이 사는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은 열망이 크다. 청소년기에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이 더 적지 않을까 싶다. 대륙에 있는 청소년이라면 부모님을 설득하든 가출을 하든 다른 나라에 가는 도전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기차를 타고 옆나라에 가서 살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정착할 수도 있다. 언제든 기차만 타면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새로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면 또 기차를 타고 옆 나라로 이동한다. 그렇게 해외 경험이 쌓인다. 섬나라에 사는 10대 청소년에겐 꿈과 같은 얘기다. 기차를 타는 것과 비행기를 타는 것은 심리적 거리가 하늘과 땅 차이다. 기차를 타러 가면서 열차시각 3시간 전에 역에 도착해야 하나? 액체 물품을 따로 정리해 지퍼백에 담아야 하나? 가방 속에 커터칼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하나? 손톱깎이를 들고 탈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하나? 스프레이류나 음식은 가방 속에 넣지 못하나? 그런거 없다. 그냥 항상 메고 다니던 가방에 속옷과 옷을 쑤셔놓고 열차 시각 5분 전까지 역에 가면 된다. 일상적인 교통수단을 타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사람과 일상과 거리가 먼 비행기를 타야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의 인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섬나라에 사는 10대 청소년을 보자. 이 청소년은 왜 영어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쓰지도 않는 언어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해야하는건가? 입시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어차피 일상에서 쓸 일이 없는 외국어를 내가 도대체 왜 배워야 하나? 혹시나 해외에 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안 갈 확률이 훨씬 높잖아! 이 청소년에게 글로벌 공용어인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피부로 체감되지 않으니 알 턱이 없다. 당장 가출을 해서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는 아이에겐, 그리고 그런 열차를 타고 외국인이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나라에 사는 아이에겐 외국어의 중요성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자유롭게 외국을 나다니고 싶다면 당연히 해야하는 공부다.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얘기로 느꼈을 것이다. 국경을 맞댄 나라가 있지만 갈 수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섬나라 국민들이 갖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분단이 70년을 넘어가면서 섬나라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서 딱히 통일이 되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젠 내 주변에 통일을 원하는 사람보다 원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굳이 해야되냐는 사람이 태반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감독들은 알제리, 스위스, 세르비아, 콜럼비아 등 국적이 천차만별이었다. 프랑스에서 불어로 영화를 찍고 있고 프랑스 영진위 지원을 받는 엄연한 프랑스 감독들임에도 국적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프랑스에선 그게 당연한 거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99.9%가 한국사람이다.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사람이 한국 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왜 걔네들한테 우리나라가 지원을 해주냐'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우린 철저히 고립된 나라에 살고있다. 그게 그렇게 나쁜거냐, 유럽이랑 우리가 같냐, 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여전히 팩스를 쓰는 일본을 보면서, 은행 보안키를 플로피디스크에 보관하는 일본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고 비웃지 않았냐고. 팩스가 그렇게 나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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