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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18. 2023

2024년 다이어리가 필요한가에 대한 고찰

프랑스에서 다녀와서인지 프랑스에서 받은 영감들로 글을 쓰고 있다. 이번엔 노트필기에 관한 글이다. 


프랑스 감독들과 교류를 하면서 느꼈던 재밌는 점 중에 하나는 프랑스 감독들은 여전히 종이노트를 쓴다는 것이다. 한국 감독들은 랩탑이나 태블릿만 챙겨오는 반면에 프랑스 감독들은 종이노트도 꼭 챙겨왔다. 그들도 랩탑과 태블릿을 쓴다. 하지만 필기를 종이에 했다. 이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케이스가 모두가 서명을 해야하는 서류를 받았을때, 한국 감독들은 펜이 없어서 당황해하고 프랑스 감독들은 자신의 펜으로 서명 후 한국 감독에게 펜을 빌려준 상황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걸까. 


생각해보면 나야말로 노트필기의 화신이었다. 중학교때부터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매년 새해를 다이어리에 신년 목표 중장기 목표 단기 목표를 정리하면서 맞이했다. 중고등학교 다이어리는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렸고, 대학교 1학년때부터의 다이어리는 차곡차곡 책장에 꽂혀있다. 2015년이 마지막 다이어리다. 2016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2016년에 맥북을 들였고, 아이폰과 맥북의 노트 연동과 캘린더 연동이 실시간으로 되자 다이어리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일정 체크를 위해 매번 다이어리를 꺼내 보는 것보다 아이폰으로 달력을 보는게 훨씬 편했으니까. 실제로 2015년까지는 어딜 가든 다이어리를 들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다이어리를 쓰지 않으면서 새 펜이 쌓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행사상품으로 펜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쓰질 않으니 펜을 버릴 일도 없었다. 나는 노트 필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으니 모나미 153, 모나미 플러스펜이 항상 넉넉하게 집에 구비되어 있었고, 어딜가나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기 때문에 만년필 선물도 많이 받았다. 만년필 펜촉이 다 말라붙어서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버리기도 애매해서 펜들과 만년필들은 서랍 한켠을 차지하고 있고, 언제 정리가 될 지 나도 모르겠다. 


아이폰과 맥북에 일정을 정리하는 것에 기본 조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도 이번에 프랑스에 가서 깨달았다. 프랑스 감독들도 아이폰을 쓰고 맥북을 쓰고 아이패드를 쓴다. 하지만 종이노트를 여전히 선호한다. 그 이유는 기본 조건과 연관되어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아챘을 것이다.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가 아니면 노트와 캘린더는 연동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산 꼭대기에서도 핸드폰이 잘 터지는조그마한 땅덩어리의 나라기 때문에 연동이 안 될 염려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트와 펜을 백업으로 들고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핸드폰 안테나가 안 터지는 곳이 너무 많았다. 지하철은 특히나 안 터졌고 건물 지하도 터지지 않았다. 안테나가 1개인 곳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나는 프랑스 시골에 갔다온 것이 아니라 파리에만 있다가 왔다. 수도인데도 그렇다. 수도가 아닌 곳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나라도 이렇게 인터넷이 안 터지는 곳이 많다면 똑같은 했을 것이다. 새삼 나는 인터넷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쇼츠를 안 보고 SNS를 안 해서 남들보다 인터넷에 덜 의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좋았던 점도 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대화를 하더라.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웹툰을 보고 커뮤니티를 보고 통화를 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그런 광경을 접하니 충격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같은 느낌. 2023년에 제작사로부터 받은 다이어리는 한 페이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2024년은 한번 다이어리를 다시 작성해볼까. 아니다. 효율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나같은 인간은 클라우드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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