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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19. 2023

영화, 예술, 프로파간다

CSR이라는 용어를 오랜만에 들어봤다. 2000년대에 경영계에서 화두가 되었던 단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컫는 단어로 Corporate Social Responsibilties의 약자다. 지구온난화로 인류가 멸망할 위기이니 이제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을 CSR로 표현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환경 문제를 CSR로 규정한 경우를 못 봤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만 쓰고 있는 단어일수도 있고, 한국만 안 쓰고 있을 수도 있고, 자세한건 잘 모르겠다. 


지구온난화에 당연히 모두 대응해야 한다. 거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인류역사상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고 인류는 슈퍼바이러스를 제대로 극복도 못했다. 독감과 코로나가 동시 유행하는 상황이고 지구엔 인간이 너무 많아 이종간 바이러스 전파는 일상이 될 것이다. 영하 20도를 찍는 한파가 불어닥치는 이유도 원래는 북극의 찬 공기를 지켜야할 Z기류가 온난화의 영향으로 약해지면서 찬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다. 매년 전례없는 날씨를 겪고 있고, 점점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파리의정서를 지키는 데에 모두가 실패하고 있고, 석유문명은 오히려 석유시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정서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인류의 석유 사용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매년이 피크다.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노력은 빨대부터 실패하는 판국에 될 리가 없다. 지구온난화는 당장 직면한 위기이고, 해결해야할 생존문제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영화가 되어야 할까? 영화감독들에게 환경친화적인 영화를 만들라고 요구하는게 맞을까?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지금 인류가 얼마나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 영화 한 편 제작하는데에 탄소가 얼마나 배출되는지, 환경친화적인 영화 제작 환경은 어떻게 조성하는지 에서 끝났어야할 강의가 '스토리의 힘'으로 이어지면서 선을 넘기 시작했다. 주부을 역전시키는 대표적인 말이 스토리의 힘 따위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고? 그럼 예술이 세상을 바꾼 케이스부터 얘기해줘야지. 베토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고, 피카소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예술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설명해주면 이해할테지만, 설명 못 하겠지. 그런 케이스가 없으니까. 예술은 세상을 바꾼 적이 없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필요도 없다. 예술은 세상을 바꾸려고 존재하는게 아니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예술을 수단으로 삼는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본인이 예술을 즐기는 법을 모르며, 세상 모든 것을 수단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런 인간들에게는 인간도 수단에 불과하다. 목적에 의해 사용되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수단. 인과관계가 굉장히 모호한 케이스들을 들이밀면서 예술이 세상을 바꾼 케이스라고 우기는데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가 젤렌스키가 인기 TV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을 맡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정치환경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드라마 때문이라고 말 못한다. 인지도를 쌓는데에는 당연히 도움이 됐겠지. 그럼 인지도를 쌓게 해주는 것들은 모두 세상을 바꿀 수 있나? 인지도가 아무리 높아도 선거에서 떨어진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이 되어야 세상을 바꾸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법이고, 국회의원은 입법의 주체요 대통령은 행정의 주체인데다 시행령을 만들 수 있으니 그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니 '선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선거운동'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인지도 쌓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면 억지 아닌가? 왜 입법주체와 행정주체는 가만히 두면서 영화를 가지고 난리인가? 그래서 나는 Cancel culture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Cancel을 해야할 대상이 국회의원이어야지 왜 연예인인가? 학폭 논란이 있는 연예인과 국회의원 중 Cancel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후자다. 학폭을 막을 법을 만들어야할 국회의원이 학폭 가해자라면 입법과정과 법의 하자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연예인을 아무리 후두려 패봤자 학폭은 줄어들지 않는다. 법을 만들면 줄일 수 있다. 학폭 얘기가 나왔으니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교육계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아닌 총기난사다. 객관식 문제. 다음 중 무엇이 총기난사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1. 영화, 드라마, TV에 총이 나오는 것을 금지시킨다. 2. 총의 개인거래를 금지하는 법을 입법시킨다. 이지선다 입니다. 문제(question)는 그닥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현실은 정 반대로 간다는게 문제(problem)다. 청소년 흡연 막겠다고 한국 TV에서는 담배가 안 나온다. 청소년에 있어서는 게임도 문제고 만화도 문제고 드라마도 문제고 예능도 문제고 영화도 문제다. 단 한번도 부모가 문제인 적이 없다. 


이런 견해를 드러내면 질문이 드러온다. 그럼 왜 영화를, 예술을 하려고 하냐고. 내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영화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은 거다. 영감을 받은 사람은 그 영감을 가지고 또 다른 것을 만들어 낼테고, 거기에 또 다른 사람이 영감을 받을 것이다. 영감의 순환이다. 이 영감의 순환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고 믿는다. 예술은 향유하는 거다. 즐기기 위해 만드는 것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즐길거리는 즐길거리로 좀 남겨놓자. 세상을 바꾸려고 무한도전을, 개그콘서트를 만드는게 아니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전제추의자들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며 방송에 손대고 영화에 손대고 책에 손댔다. 당신은 전체주의자인가. 아니라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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