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백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by Renaissance

2011년 한 해를 인턴십과 공채로 보냈다. 무려 세 곳의 광고회사에서 인턴을 했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힘썼으니 별의별 광고, 미디어 책을 섭렵했다. 그때 접했던 백 권이 넘는 책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명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2011년에 번역 출판된 책은 당시 나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9년 말에 한국에 등장한 아이폰3GS가 나라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버렸고, 책이나 신문에서만 접하던 '유비쿼터스'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실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 앞에 있을 때만 인터넷에 접속하던 사람들이 이제 깨어있는 내내 인터넷에 접속하게 되고, 예민한 사람들은 벌써 자신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자신의 폰만 들여다보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던 2011년의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딱 맞는 책이었다.


인터넷의 사용이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미래학자의 책은 실제로 인터넷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연구 자료를 보여주면서 인터넷이 인류에 끼칠 악영향을 300페이지에 걸쳐 설파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책인 만큼, 지금까지는 이 정도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인류가 어디까지 비참해지는지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리고 2023년이 된 지금, 미래학자의 예언은 정확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가 시작되면 그것을 끄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본다면 영화를 틀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이 예의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젠 영화 한 편을 안 끊고 보는 게 대단한 일이 되었다.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한 번도 끊지 않고 보았다'를 칭찬이랍시고 리뷰에 적어놓는다. 영화를 업으로 삼는 나 역시 집에서 영화를 보면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가급적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10분 남짓의 유튜브 영상도 지루하게 느끼고. 점점 빠른 호흡의 영상을 선호하게 되고. 급기야 틱톡, 쇼츠, 릴스 같은 짧은 영상들이 대세인 시대가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도파민 중독자의 시대인 것이다.


인간의 집중력이 이토록 쇠퇴하고 뇌가 해야 할 일을 인터넷에 맡기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실질문맹률이 높아지고 있다. 글씨는 읽을 수 있지만 문장이 뜻하는 바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본인만의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삼권분립은 왜 중요한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은 무언지, 입헌군주제와 공화정의 장단은 무엇인지, 화폐의 가치는 어떤 것에 영향을 받는지, 유동성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정치, 사회, 경제 기사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려면 지식을 쌓는 지루한 과정이 필요한데 인간은 점점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편을 정해놓고 '내 편이 하는 건 무조건 옳다'는 아주 편한 방식을 택한다. 내 편이라고 생각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그 뉴스를 해석하는 것도 커뮤니티의 몫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같이 칭찬하거나 같이 욕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 흑과 백밖에 없는 2차원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기술과 문화의 발전으로 인간의 욕구는 더욱 다양해졌기에 양당제의 수명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2차원 존재들에게 양당제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하여 양당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당제 국가가 점점 양당제로 가지 않을까 싶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는 구글의 유용한 점을 아주 조금 말해준 후 한 챕터 전체를 할애하여 절대악인 것처럼 대차게 깐다. 그는 알았을까. 2023년이 되면 사람들이 검색하는 것조차 귀찮아하거나 혹은 해석하지 못하여 AI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바야흐로 ChatGPT의 시대로 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모습은 니콜라스 카가 예상했던 디스토피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2023년을 무슨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겨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기계적이어서 가장 인간적인 등장인물은 도리어 기계인 것으로 밝혀진다. 큐브릭의 암울한 예언의 정수는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린 것은 바로 우리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류하는 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