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를 좋아한다. 테드창 작가로 SF소설을 좋아하게 된 이후 SF 소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우리나라의 보물같은 작가다. 이제 막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인에 가깝기 때문에 책이 몇 권 없다. 최근작부터 시간을 거꾸로 흘러 초기작 단편집까지 보게 되었다. SF소설 특성상 세계관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 몰입이 힘들다. 장편의 경우 세계관을 더 자세히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70페이지 가량을 몰입하기가 힘들지만, 그 단계가 끝나면 순식간에 빨려든다. SF 소설의 매력은 사실 세계관 아니겠나. 어떤 시간대이고, 얼마만큼 과학이 발전해 있는 세계관인지가 소설의 핵심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고, 그 설정이 소설의 매력을 결정한다. 김초엽 작가는 세계관을 매력있게 설정할 뿐 아니라, 이야기가 참 따뜻하다. 대상이 기계든, 식물이든, 곤충이든, 김초엽 작가는 어디서든 휴머니즘을 찾아낸다. 인간은 본디 악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쓰는 글과 반대급부에 계신 분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나는 김초엽 작가의 글을 정말 좋아한다.
요즘 책만 보는데 뭐 읽을거 없나 찾다가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접했다. 재밌게 읽은 [파과]의 프리퀄 단편소설이다. 사실 단편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금방 끝나버려서 살짝 짜증이 났다. 전자책으로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라 페이지 수를 간과하고 있었다. 전자책의 단점 중 하나다. 소설의 양이 가늠이 잘 안 된다는 것. 책은 두께만 보면 바로 감이 오는데, 전자책은 그게 안 된다. 소설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사실 작가의 말이었다. 2013년에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파과를 쓴 구병모 작가. 2016년 미투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활동이 활발해진 후 자신의 책이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여성서사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은 여성 서사가 아니라는 감별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손톱을 칠하고, 모성애를 느끼는 것처럼 묘사되고, 이성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이유였다. 누구보다 먼저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토록 멋진 작품을 썼는데 고작 저런 이유로 여성 서사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니 어이가 없다. 작가는 그러면서 자신의 주인공이 완벽하지 않아서 더 좋다고 밝힌다. 2023년에 파과에 대한 프리퀄 단편소설을 쓰면서, 10년 동안 자신이 들었던 평에 대해서 소회를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 것이다. 창작자 입장에서 왜 그런 글을 남겼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해봤자 잠깐 등장하거나,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모든 캐릭터가 여성이다. 아주 가끔 그 부분이 몰입을 깰 때가 있다. 이 세상엔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건가, 하는 의구심이 드니까. 하지만 그 딱 정도일 뿐이고, 소설이 재밌으니 별 생각없이 넘어간다. 이 정도로 재밌으면 여성 서사이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그런거 따질거면 소설을 왜 보나. 예술은 예술일 뿐이다. 어떤 다른 운동의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다. 사상을 전파하려는 소설은 파쇼라고 비판받지 않나. 페미니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나는 구병모 작가의 [파과]가 여성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김초엽 작가를 여성서사 작가로 칭송할거면 구병모 작가에게도 똑같이 하라. 김초엽 작가의 캐릭터도 아이를 좋아하는 여성이 나오고,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여성이 나온다. 근데 왜 누구는 여성서사 작가고 누구는 아닌가. 이러니 여성서사 라는 말 자체가 욕을 먹는거다. 참고로 구병모 작가는 여성작가다. 여성서사가 아니라고 감별받은 이유가 남자로 오인받게 하는 이름 때문이 아닌가 강력하게 의심해본다. 예술은 제발 예술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