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만 어른은 거짓말을 못 하면 안 된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교육하는 부모는 다른 이와 만나거나 통화를 할 때 거짓말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아이는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거짓말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관계라는 것이 애초에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서로에게 허용하며 살아간다.
회사를 다니면서 거짓말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깨달았다. 지나치게 원칙주의자 같은 면이 있는 나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려고 했고, 최대한 빨리 결과물을 주려고 했다. 회사 선배들은 나의 그런 모습에 아연실색했고, 거짓말이 능숙해지기 전까지 클라이언트와 직접 통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사고를 한번 겪고 나니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 만에 수정할 수 있는 것을 클라이언트가 요구했다고 치자. 언제까지 가능하냐고 했을 때 오늘 내로 주겠다고 하면 클라이언트는 내부적으로 오늘 내로 수정안이 올 것이라고 공유한다. 하지만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생겼다던지, 웹하드 서버에 문제가 있다던지, 컴퓨터가 문제가 있다던지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클라이언트에게 이런 문제를 설명하면 이해해 줄까? 내가 지금까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솔직하게 전달 기한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상참작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난 일이겠지 넘어가줄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이미 윗사람에게 보고가 됐고, 윗사람은 그 윗사람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고, 다른 팀에게도 오늘까지 줄 것이라는 말을 해 놓은 상태일 것이다. 내가 기한을 못 맞추는 바람에 클라이언트의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약속을 못 지킨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정직한 바보보다 부도덕한 천재가 낫다. 하루 걸릴 일은 3일 걸린다고 하고, 3일 걸릴 일은 일주일 걸린다고 해야 한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보수적으로 데드라인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 미묘한 선은 경력이 쌓여야만 터득할 수 있다. 너무 길게 잡으면 클라이언트의 의심을 사거나 무능력자 취급을 받고, 너무 짧게 잡으면 사고가 났을 때 대처하지 못한다. 융통성 있는 클라이언트는 나름대로 자기 선에서 데드라인을 여유롭게 보고한다. 그렇지 않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항상 일정에 치일 수밖에 없고 더욱 보수적으로 데드라인을 잡아야 한다.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프리랜서다. 본인의 제작사를 만들던가, 작가 회사를 차리던가, 스튜디오에 스카우트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프리랜서로 일한다. 그리고 감독과 작가일을 하는 사람 중 회사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다. 제작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 경력이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나는 회사일을 해본 소수의 영화감독, 작가 중 한 명이고, 그렇다 보니 괴리감을 느낄 때가 많다. 지금까지 만난 영화계 사람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숨 쉬듯이 자연스럽고 거기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 회사원의 거짓말과는 다른 것이, 회사는 들킬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들킬 경우의 후폭풍이 대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사 사람들은 들킬 거짓말을 하고, 상대방이 거짓말을 알아챘을 경우 새로운 거짓말로 모면한다. 내가 쓴 영화 기획안 A를 보고 제작사가 B 방향으로 고쳐보자고 피드백을 줬다고 치자. B를 써서 주면 전혀 다른 방향의 C를 요구한다. 나는 기획안이 점점 산으로 가는 것을 느끼고, 피드백대로 해줬는데 전혀 다른 방향이 나오는 것이 못 마땅하다. 기획안이 E쯤 가면 피드백에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 이 배우가 이런 방향을 원할 거다, 관객이 이런 거 안 좋아한다, 투자사가 이런 방향을 원한다, OTT에서 이런 게 잘 팔린다, 이런 온갖 이유가 나오는데 이렇게 다섯 개의 기획안이 나오는 동안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내가 단호하게 끊어내지 않으면 Z까지 쓰게 된다. 그리고 Z까지 가는 동안 앞에서 말했던 이유가 반대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배우가 이런 방향을 원해서 고친 적이 있는데 나중엔 이 배우가 이런 방향을 싫어하니까 고쳐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 관객은 로맨스를 싫어하니까 로맨스를 빼자고 해놓고, 한국 관객은 로맨스를 좋아하니까 로맨스를 넣자고 본인의 말을 본인이 반박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말을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아도 끊어내질 못한다. 왜? 계약을 아직 못 했으니까. 계약을 못 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계약 얘기는 D 정도쯤에 나오게 되는데, E를 써오면 이제 계약하면 되겠다고 해놓고 질질 끌다가 Z가 나올 때까지 계약을 해주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거면 나쁜 제작자에게 잘못 걸렸다 하고 넘어갈 텐데,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나의 사고방식이 다르다. 그들은 허용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허용이 안 된다. 내가 회사를 다녔던 경력이 있어서 이런 이질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엔 Z까지 들어주고, 그다음엔 P까지 들어주고, 이런 식으로 받아주는 게 점점 줄어들다가 이제 신뢰관계가 깨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같이 일하지 않는데, 업계 전체가 이런 식이면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허용해주지 않으면 일을 못할 각오를 해야 하는 업계인 것이다.
영화계는 왜 이런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계가 된 것일까. 이유는 명징하다. 계약을 따내면 큰돈이 오가는 시장이다. 계약을 하기 전까지 계약을 빌미로 온갖 갑질을 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100명의 감독, 작가를 만나 수백 개의 거짓말을 해도 한 개의 계약만 해주면 그 한 명은 지금까지의 거짓말을 용서해 주고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다. 오히려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나머지 99명이야 어찌 되든 알바 아니다. 이게 용납이 되는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나의 융통성을 무한정으로 늘려야 한다. 지나친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회사에서 많이 깎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계에선 여전히 지나친가 보다. 원칙을 지키고 싶으면 성공을 해야 한다. 성공한 후에야 말할 수 있게 되리라. '지난번이랑 말이 안 맞는데요? 이러면 같이 일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