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센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입장하자마자 딸을 보며 직원이 활짝 웃는다. 영어를 못하는 6세 어린이는 자기한테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다. 그러자 직원이 주먹을 내밀었고 딸이 무슨 뜻인지 안다며 자기의 주먹을 직원의 주먹에 가져다 댔다. 나이 많은 직원은 어린이가 참 힘이 세다고 과장된 몸짓을 하며 웃는다. 엄마, 저 아저씨가 뭐래?라고 묻길래. 네가 힘이 엄청 세대 너보고 천사라면서 오늘 재밌을 것 같냐고도 물었어. 그제야 아이가 긴장을 놓는다. “나 살살했는데? 엄청 살살?”
아이에게 오페라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엄청난 결단이었다. 어른들도 졸고 있는 클래식 공연에 6세 어린이가 잘 버틸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은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랑 여행을 오면 혹시나 엄마랑 봤던걸 생각하면서 또 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1막만 보고 나오는 것을 목표로 표를 사러 갔다. 인터넷으로 구매하지 않은 이유는 6세 어린이가 입장 가능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클래식 공연은 7세 이상이어야 관람 가능한 경우가 많다. 많은 게 아니라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직원에게 아이가 공연을 볼 수 있는지 직접 물어보기 위해서 티켓박스로 갔다. 직원은 당연히 된다며 어린이가 있으니 학생 할인으로 오케스트라석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나는 항상 꼭대기 층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의 표를 사서 공연을 봤으므로 1층 자리를 아무리 싸게 준들 얼마나 쌀까 싶어서 가슴이 두근댔다. 그런데 이거 웬걸? 꼭대기에서 보는 것보다 더 싼 가격에 표를 살 수 있었다. 대박!
그렇게 6세 어린이는 엄청 좋은 자리에서 오페라 공연을 보게 되었다. 표를 산 뒤, 근처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예쁜 드레스를 입은 언니들을 보며 와~ 멋있다! 하고 어린이가 웃는다. 그렇게 우린 천천히 좌석을 찾아 이동했다. 6세 어린이가 자리를 잡자 주변이 난리가 났다. 귀여운 천사가 공연장에 왔다며 박수를 치거나 같이 공연을 보게 돼서 즐겁다거나 한 마디라도 더 시켜보려고 난리다. 아쉽게도 우리 아이는 알아듣지 못한 채로 땡큐만 연발했다. 그때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어린이가 오늘 처음 공연을 보는 것인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좋은 연습이라며 박수를 치신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하셨다. 나는 옆자리에서 그 내용을 듣고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오~ 난 오늘 아주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됐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오페라 데뷔에 함께 하게 됐어!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을까!
나는 어린이가 와서 혹여나 관객들이 싫어할까 봐 무척이나 초조했다. 그런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페라를 보게 된 것을 축하해 주는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공연이 시작됐고 딸은 나름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러나, 라이온킹과 알라딘 뮤지컬을 본 후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봤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공연 중에 입술을 뜯고 있길래, 1막이 끝난 후 공연장을 나왔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할아버지와 3막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내가 다 아쉬웠다. 어린이의 감상평 “이게 오페라라고? 완전 재미없어!”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클래식 데뷔를 재미없는 것으로 끝내버리면 안 될 것 같았는지 남편이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공연을 찾아냈다. 이 역시 링컨센터에서 하는 것이었고 내용을 보니 공연 1시간 전엔 어린이들을 위한 악기체험 시간도 갖는다고 했다. 이번엔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갔다. 뉴욕에 있는 어린이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는지 북적였다. 우리 집 어린이는 바이올린과 첼로 체험을 했는데 체험이 끝난 후, 현악기는 너무 어렵다며 자기는 타악기를 선택해서 북을 치겠다고 했다. 나는 타악기도 어렵다고 얘기해 주며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공연은 생각 모자를 쓰면 각기 다른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줄거리로 전개됐다. 처음엔 아이들 모두 지루해하는 듯 보였으나 모차르트 음악이 나오자 집중도가 높아졌다. 그렇게 쇼팽이 못해낸 것을 모차르트가 해냈다.
공연 중간중간 약간의 소음이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발달장애 어린이가 이 공연장에 와 있음을 말이다. 아이는 각성이 올라왔는지 소리를 간간히 지르며 상동행동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아이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조용한 음악이 흐를 때도 그 아이는 소리를 질렀으나 그냥 물 흐르듯이 공연이 진행됐다. 어린이들은 인터미션없는 75분이 힘들었는지 시간이 흐를 수록 움직여댔다. 관객석에서 집중도가 떨어진 아이가 머리를 마구 흔들거나, 괜히 앉았다가 일어서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집에 가는 어린이들도 꽤 보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린이 공연이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공연이 끝난 후였다.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들이 질문을 받았는데 어린이들이 서로 하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언제부터 악기를 다루기 시작했는지, 왜 그 악기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고 생각 모자들은 누구의 것인지 묻는 아이도 있었다. 공연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라도 아이들이 자신 있게 손들고 말을 하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우리 집 어린이가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자기도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을 영어로 할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한국에서는 뭔가 발표할 때마다 수줍어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자신도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들어본 우리 집 어린이가 기특했다.
두 번의 체험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린이를 환영했던 오페라 극장의 분위기, 어린이가 마음껏 즐기고 질문하게 했던 어린이 공연의 분위기, 발달장애아가 사회에 이미 녹아들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나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