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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20. 2023

우리 딸은 6세에 3개 국어를 한다.

- 어린이의 자신감 뿜뿜 시리즈를 배워야겠다.

“저는 한국어랑 영어를 할 수 있어요!”      


시차부적응 상태로 뉴저지 한인 민박에서 자고 있는데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박집주인의 딸이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 가려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들었던 말이라서 이게 꿈인가 싶었다. 몇 시간 뒤에 일어나 딸에게 물었다. 너 혹시 언니한테 한국어랑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자기가 한 말이 맞다고 한다. 그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쳤고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6세 어린이가 영어를 할 수 있다니 부모도 모르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영어로 할 수 있는 말이 뭐냐고 물었다. 딸은 자신 있게 “땡큐~ 하우아유~ 헬로~ 애플 주스!”란다. 그렇게 말해놓곤 엄마랑 아빠가 자기 말에 왜 웃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6세 어린이는 보스턴 티파티 사건이 뭔지 모르지만 언니 오빠들 사이에 껴서 열심히 차가 들은 상자를 던졌다. 다행히 원.투.쓰리하면 던지라는 말은 알아듣고 수행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도쿄 경유였다. 일본에 10시간가량 체류할 수 있어서 공항 밖으로 나가 밥도 먹고 온천도 하며 장시간 비행기에서 쌓인 피로를 녹였다. 그때 딸이 또 자신 있게 말한다. 자기는 일본어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영어에 이은 어린이 자신감 뿜뿜 시리즈가 또 탄생하나 싶어서 딸에게 물어봤다. 할 수 있는 일본어가 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리가또~ 도조~ 하이!”라고 말한다.

  

나는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할 수 있는 언어가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외국어를 잘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유창하게 해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밖으로 꺼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것이 막힘없어야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정도가 아니면 어디 가서 외국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매사추세츠에 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기가 아는 미국인이 자기는 한국어 할 수 있다고, 아주 많이 잘한다고 해서 해보라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가 전부였다고. 그래도 아주 자신감 있게 자긴 한국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단다. 하루는 또 다른 미국인이 자기가 불어를 잘한다고 자랑하기에 불어로 말을 시켜봤더니 전혀 못 알아들었다고. 불어 역시 봉쥬르~ 정도 할 수 있는 게 다였음에도 자기는 잘한다고 얘기했다나. 그러니 나보고 자신 있게 말하라고 했다. 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나는 잘 안다.


미국을 간 이유는 일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통역을 맡아주셨는데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그런 줄 아셨나 보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내가 상대방과 스몰토크를 하고 있는 걸 보신 듯하다. 그런 내가 밖으로 나와서는 커피 한 잔 시킬 때도 입을 꾹 다물고 영어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영어를 훨씬 잘하는 분이 있는데 내가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못 말해서 주문이 잘못 들어갈 수도 있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더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해보면 괜히 말했다가 내가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걸 들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미국에 오랜 시간 살고 계시는 분 앞에서 창피당하기 싫었다고나 할까. 문제는 한국인이 옆에 없을 땐 내가 영어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에 가서 원하는 걸 보고 싶은데 룸번호가 몇 번인지 묻거나 예약자 명단에 이름이 누락됐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한다거나, 호텔 직원에게 내가 이 도시에 처음 와서 잘 모르는데 혹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거나. 아무튼 다 한다. 일행이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한국어로 바로 통역도 해준다. 그런데 유달리 한국인이 앞에 있으면 말을 못 한다. 옆에서 다~ 알아듣고 있으면서도 말을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유창하게 못하는 것이 창피한 일은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숨어버린 걸까.

    

한국에 돌아온 후, 딸이 부러워졌다. 직접 부딪쳐봐야 더 잘할 수 있는 건데 소심하게 자꾸 물러서는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칭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딸처럼 나도 자신감 있게 말해보려고 한다. 30살이나 더 많은 내가 6세 어린이에게 큰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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