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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16. 2023

딸아이가 공모전에 당선됐다. 그런데 1등이 아니다!

출국 일정이 있어서 비행기를 탔다. 긴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딸아이가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했는데 1차 심사를 통과했으니 그림 원본을 특정일까지 보내라고 말이다. 헉.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 이걸 어쩌나. 급하게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그림 원본을 한국에서 보내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귀국을 했고 결과 통보가 왔다. 최우수도 아니고 우수도 아니고 장려도 아니지만 상을 탄다. 희한하게 상에는 이름이 없었고 재단 이사장상을 수여하게 됐다. 뭐지? 입선인가 그럼?

마티스처럼 그려서 내면 공모전에 떨어진다. 하하. 예술은 힘들다.

지난번 등대 그리기 대회에서 처절하게 패배를 맛본 딸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상을 타게 됐다는 이야기에 딸은 대번에 이렇게 물었다. “1등이래?” 헉. 아니라고 답했더니 “그럼 2등이래?”하고 물어본다. 그것도 아니랬더니 그럼 자기는 떨어졌냐고 묻는다. 으잉? 상을 받는다고 얘기했는데 이건 무슨 소리일까나? 1등이나 2등은 아니지만, 상을 받게 됐다고 상은 다 좋은 거라고 말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시상식에 갈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고 딸은 또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나 1등이래?” 아니 이걸 왜 또 묻는 거지? 아니라고 말했더니 2등이냐고 3등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입선이라고 정말 잘한 거라고 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받은 건 엄청 잘한 거라고 칭찬해 줬더니 그제야 웃는다. 1등이 너무 하고 싶으면 또 다른 공모전에 그림을 그려서 내면 된다고 했더니 싫단다. 이제 그만 그리겠다고 한다. 그동안 도화지를 가득 채우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나? 아. 이제야 딸이 왜 1등이냐고 계속 물어봤는지 알 것만 같았다. 1등을 해야 잘한 것이라서 자기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 생각한 것 같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정말 이상하다고 이게 왜 유명하냐고 여러번 물은 어린이. 자연스러움과 인위적임. 비확실성 등을 이해하면 이 그림이 엄청나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될까.

공모전에 출품하게 된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였다. 나는 남편과 공모전에 열심히 작품을 내고 있는데 올해 남편은 4번의 수상을 나는 3번의 수상을 했다. 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았나 보다. 그것이 압박으로 작동했을 줄이야. 아무튼, 아이는 수상을 하게 됐다. 그것도 2번의 도전만에!! 짧은 기간에 혼자 힘으로 그려서 상을 탄다는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아이가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하나도 도와주지 않고 수상했다는 것은 정말 잘한 건데 말이다.  

    

딸은 가끔 라이온킹의 심바처럼 이 세상의 주인공은 누구냐고 묻는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없다고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아이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주인공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왜 이 세상엔 없는 것인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딸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걸까? 이럴 땐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어서 매번 제대로 된 답을 못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나도 좋은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아무튼, 기나긴 공모전의 긴장감이 이제야 끝났다. 점심 맛있게 먹고 오후 시상식에 즐겁게 참석하고 와야지. 딸아, 정말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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