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유치원에서 애국가 부르기 대회를 했는데 은상을 받았다고 울기 시작한 것이다. 딸이 다니는 유치원엔 모두 일곱 명의 학생이 있다. 애국가 부르기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상을 받았는데 대상 한 명, 금상 세 명, 은상 세 명이다. 딸은 은상은 꼴찌라며 막 울었다. 대회에서는 선생님 평가 점수와 친구들 평가 점수를 합쳐 수상자를 정했는데 친구들이 자기 이름을 안 써준 것 같다고 마구 울었다. 생애 첫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대회 전날 옷방에 들어가서 집이 떠나가라 연습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슬펐을 것이다. 대상을 꼭 받아오겠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유치원에 갔는데 은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때부터 딸은 새로운 대회가 없는지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후, 나는 딸이 참여할만한 대회를 찾았다.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가 그것이다. 주제는 자유! 그런데 딸은 정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배경은 칠하지도 않았다. 여백의 미라기엔 여백이 절반 이상이었다. 나는 이렇게 그려서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아이를 채근했다. 대회에 내는 그림에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의도가 뭐냐고 묻는다. 그래서 열심히 설명해 줬다.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을 핸드폰으로 검색해 가며 이 그림은 보기만 해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있는데 너의 그림은 무엇을 얘기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러면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얘기해 줬다. 나는 딸이 수상을 못 하면 애국가 부르기 대회처럼 엉엉 울 것 같아서 계속해서 아이를 다그쳤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도무지 작품 의도가 나오지 않아서 대회를 포기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등대 그림 그리기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제를 보니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쓰여 있었다. 아이에게 일단 그리고 싶은 등대를 그리라고 했다. 헛. 그런데 아이는 등대가 뭔지 몰랐다. 그래서 등대가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처음엔 강아지 등대를 그렸다. 자기는 강아지 등대가 있으면 좋겠어서 그렸다고 한다. 그다음엔 고양이 등대를 그렸다. 자기는 고양이도 좋아한다나? 딸은 고양이 등대에 물고기들이 놀러 오는 그림을 그렸다. 어둑어둑해지면 고양이 등대에 불이 켜지고 그 불을 보고 물고기들이 놀러 오는 그림이었다. 여름에 봤던 고흐 그림이 인상적이었는지 바탕은 고흐처럼 점묘화는 아닌 것이 넓은 선들을 마구마구 칠해서 완성했다. 오~ 드디어 작품 의도가 있는 그림이 나왔다! 자기가 고양이 등대고 물고기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해 줘서 오는 거라니. 입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그렸다는 것이 나는 대견하다.
그리고 오늘. 결과 발표가 났다. 약 250점의 작품 중 100점이 조금 넘는 작품이 선정됐는데 딸의 이름이 없다. 아. 온종일 발표가 나길 기다리며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했는데 딸의 이름이 없다. 딸에게 두 번째 실패를 알려줘야 하는 슬픔에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도 애가 타게 결과 발표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남편도 지난번 애국가 대회 때 아이가 너무 슬퍼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런데 비상이 걸린 것이다! 100점 넘게 상을 준대서 꼴찌라도 걸리길 바랐건만 다른 그림들이 훨씬 좋았나 보다. 남편은 자기가 퇴근하고 갈 때까지만이라도 상을 못 받았다고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대책회의는 어떡하지 남발 회의로 끝났고 나는 일단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했다. 상이 가득 차게 음식을 시켜서 먹이고 혹시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고르라며 옷도 사줬다. 집에 와서 차마 말을 못 하고 미친 듯이 고민했다. 이걸 어쩐담 하고 말이다.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엄마·아빠가 주는 상을 만들어야겠다고 말이다! 우리 아이가 등대그림을 그리면서 우리에게 준 기쁨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상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 상도 아이가 충분히 실패의 쓰라림을 느낀 후 주려고 한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려서 완성했던 고양이 등대 그림
딸이 상을 받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나와 남편이 최근 공모전에서 상을 꽤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로, 남편은 공예 작품으로 상을 연이어 받았다. 딸은 엄마와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상을 받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었다. 아뿔싸. 우리가 원인이 된 것 같다. 그런데 남편과 나도 승률이 매우 높진 않다. 여러 곳에 응모한 후, 인연이 닿는 곳에서 상을 받았고 상을 못 받을 때마다 왜 못 받았는지 엄청 좌절했다. 그렇게 좌절이 쌓이면 뭐가 부족한지 보였고 그걸 딛고 일어설 때마다 상을 받았다.
처음엔 딸에게 수상 실패 소식을 영원히 숨길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맞다. 그러면 안 된다. 대회에 나간 것은 내가 아니라 딸이고 딸이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박탈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건강한 경쟁이 얼마나 좋은지 나도 남편도 그리고 딸도 마음속 깊이 느낄 때 성취욕이 뿜어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