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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21. 2023

병설유치원이 사라진다.

둘째가 다니는 병설 유치원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3명 이상의 원아를 모집하지 못하면 휴원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현재 7명의 학생이 다니는데 내년에 5명의 유치원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므로 유치원에 2명밖에 남지 않는다. 병설 유치원은 5명 이상의 학생이 한 반을 구성해야 유지가 된다고 한다. 3명만 더 오면 되는데 …… 3명만!   

둘째가 다니는 병설 유치원은 정말 넓다. 정원이 총 18명인데 내가 생각하기엔 30명은 다녀도 될 정도로 넓다. 유치원 교구도 엄청나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유아 학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자부담이 0원이라는 점이다.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료가 지원되지만 특별활동 등의 이유로 매달 10만 원 이상의 비용을 냈었다. 병설 유치원은 초등학교 시설을 같이 쓰므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급식실이나 도서관, 시청각실 등을 미리 사용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교육청에서 관리해서 그런지 외부 강사가 오는 수업도 매우 알차다. 그런데도 원아 모집이 잘 안 된다니 정말 충격이다.      


왜 이렇게 아이들이 안 오는지 사실 잘 알고 있다. 병설 유치원의 정책이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육아휴직과 재택근무라는 찬스 덕분에 아이를 병설 유치원에 보내고 있지만 그전엔 엄두도 못 냈다. 올해는 다행히 오후 5시까지 있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는데 첫째가 병설 유치원에 갈 때는 오후 3시만 돼도 아이들이 대부분 집에 간다며 암묵적으로 3시 하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땐 친정엄마가 하원을 도와줘서 첫째가 겨우 다녔고 둘째마저 부탁할 수 없어서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냈었다. 어린이집은 야간 연장도 가능하고 방학도 짧다. 방학에도 긴급 돌봄 시스템이 있기에 급하게 일을 나가야 한다면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병설 유치원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또 있다. 지금 다니는 병설 유치원은 맞벌이가 아니면 오후 방과 후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하원 시간은 점심 식사 후가 된다. 어린이집은 오후 4시에 하원을 하니 부모 한쪽이 전업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어린이집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 방학이 길다는 단점도 있다. 맞벌이 가정은 방학 때도 돌봄 과정이 운영돼서 맡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긴긴 방학 동안 아이가 집에 있어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교육의 방점이 다른 쪽에 찍혀 있다고 생각하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잘 모른다. 방과 후 과정을 많이 선택하면 최대 오후 6시까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이것도 집 앞 놀이터에서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엄마에게 들었는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가 애를 낳으라고 했냐! 역시 헬조선에서는 애를 낳으면 안 된다. 애는 엄마가 보는 게 최고다! 집에서 애나 봐라!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 공동체는 함께 잘 되는 방향을 찾기보단 모두 자멸하기로 작정한 듯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을 표준으로 정한 것 같다. 슬프다.     

 

다시 돌아가서 병설 유치원 얘기를 해보면, 병설 유치원 하원 후, 지역 아동센터로 아이들이 가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문제는 지역 아동센터는 유치원생을 받아주지 않으며 우선 보호 아동 비율을 유지해야 하기에 모든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우리 동네엔 지역 아동센터가 없다. 2차로를 사이에 두고 2개의 단지가 총 3천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데도 없다.  (지역아동센터 이용대상자가 초등학생부터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유치원생도 지역아동센터에 참여하고 있다는 글도 인터넷에 검색된다. 무엇이 진실인가! 아무튼 대부분의 공고는 초등학생부터 대상자로 선정하고 있다. 그러니 유치원생은 못 갈 확률이 크다.) 아, 지역아동센터는 교육청에서 관리하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안 되겠다.

그렇다면 돌봄 선생님에게 하원을 부탁한 후, 집에서 아이를 잠깐 봐주시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문제는 돌봄 신청을 주민센터에 등록한 지 벌써 한 해가 다 흐르고 있는데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하염없이 대기 중이다. 그러므로 학원 뺑뺑이를 통해 버티거나 개별적으로 시간당 12,000~ 14,000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하고 시터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설 유치원은 꿈도 꿀 수 없다. 근처 어린이집의 야간 보육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그럴 거면 처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럼 역시 부모 중 한 명이 직장에서 일찍 퇴근해서 오는 수밖에 없다. 병설 유치원에 보내려고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역시 외벌이를 택해서 병설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낫다. 아~ 돈을 벌 수 있는데 병설 유치원 때문에 외벌이를 택할 부모가 있을까. 대출금도 내야 하고 아이 교육비도 벌어야 하고 노후자금도 쌓아야 하는데. 차곡차곡 쌓은 커리어는 어쩌란 말인가! 병설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외벌이를 한다?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병설 유치원에 안 보내는 것이 낫다. 그렇네! 병설 유치원에 안 보내면 되네! 그리고 애를 안 낳으면 되겠네! 그럼 이런 고민도 안 해도 되니 말이다!     


원아 모집에 실패해서 휴원한 병설 유치원은 경기도만 2021년에 43개, 2022년 58개, 2023년엔 89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저출생의 여파가 있다고 해도 병설 유치원 살리기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다. 교육청에서 아~ 몰라 몰라~ 애들이 없는데 어떡해! 하고 손을 놔버린 느낌이다. 유일하게 3명 이상의 원아를 모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는데 둘째의 병설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다. 아파트 단지에 전단도 붙이고 학교 앞에 커다랗게 포스터도 붙이고 큐알 코드도 넣어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동영상도 제작하셨으나 학생 수가 적고 방학이 길며 일찍 하원한다는 단점 때문에 학부모들이 선뜻 입학원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하도 없어서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방과 후교실에 참여할 수 있고 방학 돌봄도 가능하도록 유치원이 문을 열어놨음에도 원서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아~ 우리 동네의 병설 유치원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그 좋은 시설이 하루아침에 잠자고 있을 생각을 하니 슬프고 아이 눈높이에 맞춰 교육을 해주시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실 것 같아 안타깝다. 더 걱정은 유치원 휴원결정이 내려지면 2명의 아이가 다른 기관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 선생님 빼고는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유치원 원장도(원장은 곧 학교 교장이다.), 교육청도, 교육감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것 같다. 아~ 병설 유치원의 미래는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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