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아마 바쁘지 않을까 화요일도 성급해 보이지 안 그래 수요일은 뭔가 어정쩡한 느낌 목요일은 그냥 내가 왠지 싫어 우 이번 주 금요일!
- 아이유, 금요일에 만나요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인턴 근무 확인서를 발급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급하게 이직을 해야 할 것 같다나? 얼마나 급하게 이직을 할까 싶었는데 출근하자마자 퇴사를 꿈꾸고 있었다. 나에게 발급 요청을 해온 것은 새로운 곳으로 출근한 지 삼일째였나. 박봉도 박봉인데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인 줄 모르고 들어갔다고 한다. 어라?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상사 하나는 계속해서 방관하고 다른 상사 하나는 입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었다. 첫날부터 대환장 버라이어티를 감상하게 된 친구는 바로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사회생활을 처음 한 것도 아닌데 오죽하면 첫날부터 대탈출을 꿈꾸는지 감이 왔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언제 퇴사할 것인가! 이번 달 중순에 할 것인가! 이번 달 말에 할 것인가! 한 달은 채우는 것이 예의인가 이왕 나갈 거 빨리 사라져 주는 것이 예의인가! 아~ 이거 정말 고민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입사하자마자 초고속으로 퇴사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퇴사한다고 말할 용기! 그래서 친구는 금요일에 말을 하려고 각을 재고 있었다. 빨리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대로 회사에 남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말한다! 그렇게 금요일이 왔다. 말을 해야 한다! 어라, 근데 일을 준다. 아~ 말해야 하는데!! 일을 또 준다. 아~ 지금은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려고 할 때마다 일을 주는 바람에 금요일에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아~ 말을 못 해버렸다! 그래서 주말동안 각오를 새롭게하고 월요일에 가서 다시 각을 쟀다. 그리곤 오전에 말했다. 금요일에 퇴사한다고 말이다. 나는 왜 오늘 당장이 아니라 금요일에 하는지 궁금했다. 그랬더니 친구왈. 원래 월요일에 그만둔다고 하면 처리 속도가 느려서 대~충 수요일에서 금요일 사이에 서류 처리가 되니 그즈음으로 각을 잡았다고 한다. 오~대단하다! 그렇게 그 친구는 시원하게 퇴사를 했다. 타이밍 잘 잡았다!
나에겐 중국인 친구가 있다. 석사 시절 같이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학위를 딴 친구였다. 그 친구는 중국으로 돌아간 뒤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일 년 만에 겨우 취직이 됐다. 다행히 이름만 들어도 아는 좋은 곳으로 취직했는데 문제는 상사였다. 열심히 일 해놓으면 성과를 다 뺏어갔다. 뭐 그것도 좋다. 그런데 리더십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외주를 주는 곳에 돈을 많이 지불하고도 업체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 했고 그 몫은 고스란히 회사 직원들에게로 돌아왔다. 일을 못 하는 직원의 업무를, 잘하는 직원에게 잔뜩 넘겨주기도 하고 긴급회의를 5시에 하기로 해놓고 안 급한 일을 처리하냐고 회의 시간을 3시간에서 5시간씩 미뤘다. 친구가 말하길 한 번도 회의가 약속한 시간에 이뤄진 적이 없었다나. 버티다버티다 지친 내 친구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문제는 성과급이었다. 입사한 지 1년 5개월 되는 달에 성과급이 나왔다. 그래서 일단 3달을 버텼다. 그렇게 버틴 후, 사직서를 들고 회사로 갔다. 어라? 상사가 휴가를 냈다. 문제는 금요일에 휴가를 냈는데 그다음 주 목요일까지 연휴였다는 것이다. 오 마이갓김치! 그래서 친구는 연휴가 끝나고 말하려고 대기했다. 그렇게 회사에 갔는데 어라? 새 업무가 주어졌다. 아~ 그것도 2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 빠질 수가 없다. 이것만 하고 빠진다! 그렇게 2주년 기념사업을 어찌어찌 준비했고 일주일 뒤면 마무리 된다! 그런데! 해외팀에서 뭔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그곳에 지원을 가게 됐다. 친구가 준비한 기념사업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라서 그것만 하겠다고 버텼다. 그렇게 어찌어찌 지원 업무가 끝났다. 드디어 퇴사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어라? 근데 오늘 회식을 한다네? 그래, 그럼 회식을 하고 말한다! 친구는 호기롭게 회식장소에 갔다. 어라? 그런데 케이크? 하필 이번 달에 생일인 친구와 다른 직원의 생일파티가 서프라이즈로 진행됐다. 선물도 받았다. 집에 돌아온 친구가 울면서 위쳇을 보냈다. 선물을 받았는데 당장 어떻게 그만두냐고 말이다. 아. 그렇네. 선물 받고 나간다고 하기 그렇네. 그렇게 내 친구는 타이밍을 잡고 잡다가 퇴사를 결심한 지 5개월 만에 드디어 그만둘 수 있었다. 근무기간 1년 10개월. 나는 2개월만 더 채우면 경력이 2년인데 아깝지 않냐고 했다. 2개월이고 뭐고 새해 업무 계획을 짜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안 나오면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나로 얘기할 것 같으면 이직을 매일 꿈꾼다. 그런데 12년째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직장에서 언제나 이직을 꿈꾸지만 퇴사를 못 하고 있다. 금요일에 말하려다가 그다음 주 월요일에 말한 친구도, 오늘 말하려다가 5개월 뒤에 말한 친구도 모두 나보다 낫다. 나는 도대체 언제 퇴사할 수 있단 말이냐! 이건 다 회사 대표와 결혼해 버린 내 잘못이다.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회사 대표랑 결혼을 해서 여태 퇴사를 못하고 있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