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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Nov 28. 2023

착한 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나요.

- 부모가 강요한 것은 죄의식으로 체화된다.

유명해지고 싶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사람이 돼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꿈도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살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의 꿈은 통역사였다. 그 당시, 나는 통역사가 뭔지 몰랐다. 괜찮다.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엄마가 장래희망에 통역사라고 적으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통역사가 정말 멋있었다면서 그런 여성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오성식의 걸음마 씽씽영어를 겨우 떼고 있을 때여서 회화는 헬로, 하우아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까지만 됐을 때였다. 그래도 괜찮다. 실력은 상관없다. 어차피 꿈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일단 썼다. 그 뒤엔 뭘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에 가서는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방송반 아나운서를 했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방송을 할 수 있는 학생은 학교에 몇 안 되므로 나는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엄청난 권력을 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방송의 내용은 대단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일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니 가져오라거나, 아침 조회가 있으니 모두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교내에 울려 퍼지는 나의 목소리에 행복했다. 엄마는 나의 꿈에 만족했다. 별 터치가 없었다. 그 당시엔 종편 방송이 없어서 아나운서가 된다는 것은 KBS, MBC, SBS라는 회사에 다니게 된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직장에 딸이 다니다니 상상만 해도 얼마나 벅찬가! 그렇게 나의 꿈은 아나운서로 고정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나운서와 기자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므로 꿈을 기자로 바꿨다. 엄마는 기자도 만족했다. 나는 특정 방송국의 기자가 되고 싶어 했는데 그 방송국은 이름만 들어도 어딘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대학도 그랬다. 나는 특정 대학에 가겠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난리를 쳤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그 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의 꿍꿍이는 전혀 모른 채 엄마는 그 대학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우와~’ 하고 감탄했기에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좋아하는 가수가 다니던 대학교에 여러 차례 지원했으나 떨어졌고 기자도 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엄마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엄청나게 실망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가 옛날엔 정말 착한 딸이었는데 어느 순간 변했다고 했다. 엄마가 말한 착한 딸이라는 것은 유명한 곳에 취직해서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유명한 딸이 되려고만 했다.

영화 엘리멘탈. 자신의 가게를 딸에게 물려주려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딸 앰버.

나는 나를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살았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20대의 내 모습을 지워내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딸에게 가게를 물려주려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꿈을 이어가려는 딸. 어릴 때부터 ‘저는 언젠가 아빠 가게를 물려받을 거’라며 신나서 얘기하는 앰버의 모습이 나와 겹쳐졌다. 아, 나는 엄마가 은근히 강요한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구나. 그때야 나는 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가 대외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꿈은 있었지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는 걸 말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줄곳 ‘네가 잘못되면 엄마는 죽어’라는 말을 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글을 발표했는데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당황했다. 저도 그 말 들어봤는데 다들 안 들어보신 건가요? 그때도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몰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된 문장인지 이해하게 됐다. 아이에게 잘 돼야만 한다며 강요하고 협박했던 상황이 이제야 해석됐다. 그리고 나는 실패자라는 죄의식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앰버는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유리공예! 테이블 가운데 붉은 유리병은 앰버가 만든 것이다.


착한 딸은 위험하다. 부모가 강요한 것이 옳은 길인줄만 알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이뤄내지 못하면 나처럼 죄의식이 체화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착한 딸은 정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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