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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04. 2023

곧 결혼 10년 차, 설렘은 가고 안정감이 찾아 왔다.

집 근처 선산에 뭘 좀 심어놨는데 땅이 얼기 전에 비닐을 쳐야 했다. 혼자 하기 버거운 일임에도 남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길래 그걸 어떻게 혼자 하느냐고 같이 가자고 얘기했다. 남편이 좋아한다. 다음 날, 완전 무장하고 조수석에 앉았더니 남편이 막 웃는다. 나이 들어서 귀농한 부부 같다고 느낌이 묘하단다.

선산에 오르기 전, 남편이 알레르기로 며칠 고생했기에 독을 빼는 데 좋다는 토마토를 왕창 갈아서 나왔다. 내가 먹을 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남편 걱정. 우리 부부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느낌이 내가 갈아온 토마토 주스에서 빨갛게 퍼져나가는 듯하다.     

남편은 나보고 돌이나 좀 주우라고 하고 혼자서 삽질을 해댄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 편하게 있다 가려고 같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을 줍다가 남편이 나무를 주우러 가는 틈을 봐서 삽질을 했다. 다행히 땅이 얼기 전이어서 삽질이 쉬웠다. 저 멀리서 남편이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삽이 하나라서 동시에 할 수 없기에 돌을 줍다가 남편이 힘들어서 쉬면 재빨리 삽질했다. 흙만 파다 보면 시간 지나는 줄 모를 것 같아서 라디오를 틀어놨다. 노동요가 마음에 든다. 덕분에 남편이 혼자 했으면 이틀은 걸렸을 비닐 치기를 둘이 두 시간 반 만에 해냈다. 산에서 내려와서 신나게 코다리 조림을 먹으며 남편과 떠들었다. 오랜만에 둘이 쿵짝쿵짝 일을 하니 뭔가 묘하다. 옛날 생각이 난다. 둘만 있었을 때 말이다.

      

못 보면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던 옛날의 설렘은 우리에게 아주 가끔 찾아오고 있다. 맨날 봐서 그런가?그런 우리에게 설렘이 찾아오면 아이들이 옆에 와서 비벼댄다. 넓디넓은 가족 침대임에도 꼭 엄마와 아빠 사이에 분단선을 그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아빠 정말 보고 싶었어. 엄마가 해주는 요리가 제일 맛있어와 같은 해맑은 사랑 이야기 들으면 새로운 감정이 몰려온다. 무척이나 순수하고 부드러운 느낌 말이다.

부부사이가 좋다는 것으로 알려진 라이언 레이놀즈와 블레이크 라이블리. 올해 넷째를 출산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우린 그 틈을 타서 붙어 있는다. 그러나 목소리 큰 남편 때문에 아이들이 어김없이 깬다. 침실 문을 열고 나와서 거실에서 티브이 보는 우리를 쳐다보며 ‘딱 봐도 둘이 데이트하는 거 같은데~’라는 대사를 날린다.


아이들이 재잘대지 않을 땐 삶이 노크한다. 잊어보려고 해도 계속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부부 사이에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그런 날엔 우리가 언제 서로를 갈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하루를 버텨나가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그래도 서로를 이어놓은 빨간 실이 힘을 발휘하는지 새로운 감정을 우리 곁에 불어넣는다. 남편은 나에게 어떤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남편에게 안정감, 듬직함을 느낀다.


우리는 내년이면 결혼 10년 차가 된다. 서로에 대한 끌림만 믿고 시작한 결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출발한 결혼이지만 우리 집을 가득 채운 온기가 통장 잔고 보다 더 행복한 향기를 내뿜는다. 서로 좋고 즐겁고 밉고 행복한 일상이 그렇게 반복된다. 이것이 인연인가보다.


문제는 밖에서 그려지는 부부의 이미지다. 드라마나 영화는 신혼 초의 부부가 아니면 권태로운 일상을 더 많이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부부'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부정적인 단어가 훨씬 많이 뜬다. 비현실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반반결혼했어요’로 시작하는 고민 상담 글이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남이 만나서 서로를 아내며 사는 삶은 괴롭다. 내가 구축했던 세계를 파괴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혜를 발휘하면 배우자도 나도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내가 보기엔 나를 만나서 많이 달라졌다.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갈등이 수면 위로 너무 많이 떠오르는 시절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채 상처만 주는 사이라면 정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거저거 따져서 반으로 딱 가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가치가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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