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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Jul 17. 2018

14살 많은 남자와의 결혼, 의외로 평범합니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김혜진(2017), <<딸에 대하여>>, 민음사, p.37


모두가 잠들어있던 새벽 3시, 엄마가 전날 오후 다섯 시부터 울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랜만에 집에 찾아와 내가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 한 마디에 엄마는 울기 시작했고 그칠 줄 몰랐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딸이 말을 꺼냈다는 것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라는 것을.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엄마는 울음으로 딸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엄마는 새벽 4시 즈음 울음을 그쳤다. 그리곤 딸에게 한마디 했다. “그래도 나이 차이가 14살이 뭐야 14살이.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하고 결혼하면 편히 살 것 같아?” 어둠 속에서 딸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던 엄마가 순간 멈췄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내 몸이 오싹해졌다. 그리곤 마치, 방금 깨달았다는 듯. 엄마는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잠깐만, 14살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인이었던 사람이잖아!” 그렇게 엄마의 울음은 해가 떠서까지 계속됐다.


시간이 흘러 가을의 어느 날,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토요판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의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의 인생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고 그중 한 부분이 결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승려 직을 내려놓고 결혼해서 아들 낳고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가 나가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좋다고 말했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기사를 읽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텐데 하는 생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심지어 기자가 사진을 요구했다는 말에 아들과 셋이 찍은 사진을 흔쾌히 넘겨줬다. 신문에 나가도 되겠냐는 남편의 물음에 나는 말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아들 낳고 잘 산다는 기사 내용에 그 증거 사진이 없으면 기사가 완성이 돼요?”


문제는 엄마였다. 아이가 커서 상처받으면 어떡하냐며 앞으로는 아이를 언론에 등장시키지 말라 했다. “엄마, 신문에 우리 가족 사진 나왔는지 아무도 기억 못 해”라고 했지만, 엄마는 걱정이 산더미인 것 같았다. 독특한 결혼이어서 그랬는지 그 뒤에도 우리 가족 사진은 종종 신문과 방송에 등장했다. 역시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엄마만은 아이의 미래에 아빠의 과거가 문제가 될까 오들오들 떨었다.


나는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더 떠들고 다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마치 무척이나 잘못한 것처럼 대하는 세상에 반항하고 싶었다. 내 뒤에서 속닥대는 것을 들으니, 차라리 대놓고 내가 먼저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산 지 4년이 흘렀고 내 인생에 관한 편견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돋보기를 들고 분석해봤다. 역시나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 그렇구나~’라는 느낌 이외에는 14살 많은 전직 승려와 결혼한 나에 대해 그 어떤 코멘트도 없었다. 그러나 아주 강력히 반발하는 무리들이 4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친척이었다.


친척들은 날이면 날마다 왜 결혼을 말리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엄마는 끙끙 앓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나에게 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너희 애나 잘 키우라고 답해줘”

친정뿐만이 아니었다. 시댁 에서도 결혼 초반엔 선을 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팔불출 같아 보일 수 있으니 어디 가서 아내 자랑하지 마’라는 시댁의 말에 남편이 신경 쓰지 말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시댁에서는 스님 그만두고 결혼한 거로 사람들이 뭐라 할까 그랬다며 변명했다. 엄마도 시댁도, 말 안 하고 꼭꼭 숨기면 편견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걸까.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게 뭔데? 내가 사는 게 어디가 어때서?」”
김혜진(2017), <<딸에 대하여>>, 민음사, p.66-67


엄마가 반찬을 해놨다고 가져가라며 전화가 왔다. 사위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를 많이 무쳤다며 엄마가 크게 한 통 담아 놨다. 고맙다고 말하고 뒤돌아서려는데 엄마가 안단테의 속도로 천천히 또박또박 중얼대기 시작한다.

누구는 ‘또래’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60평대 아파트에서 평범하게 살더라, 누구는 ‘또래’ 남자 만나서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주식을 해서 돈을 좀 모았다더라, 누구는~ 누구는~하며 누구는 시리즈가 연달아 나온다. 누구는 시리즈가 길어지자 나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 사람이 60평대에 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지금 말한 엄친딸 시리즈 있잖아? 그거 검증해봐. 과장돼 있어. 엄마도 어디 가서 내 얘기 뻥 튀겨서 말하잖아.”

“아니라니깐!”


할 수 없이 또래 남자를 만나서 60평대에 산다는 사람의 아파트 단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줬다. 최고 평수가 33평을 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해줬음에도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몇 주 뒤, 엄마는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애들이 숨바꼭질하면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넓다기에 한 60평대 돼? 했는데 말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지. 30평대 초반에 산다더라고. 허허.”

  

결혼 초엔 나도 남편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  

“사람들이 우리 결혼에 대해서 뭐라 하는데. 그 한복 바지 좀 그만 입고 다니면 안돼요?”  

“이게 편한데 어떡해, 기분도 그런데 놀러갈까? 부산 갈까?”  

“운전 하기 힘들텐데 부산까지 언제가요?”  

“난 선방에서 벽만 보고 18시간씩 수행을 해서 그런지 장거리 운전해도 안 힘들더라고”  


우린 이렇게 농담하며 산다. 그것이 노출이 되지 않아. 언제나 고달프게 살거라고 생각하는게 아쉬울 뿐이다. 모든 이의 삶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사실이 허구로 둔갑한다. 그렇게 변신한 이야기는 오늘도 도시를 떠돈다.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내 생각에 내 결혼도 그렇다. 사람들을 자극하는 14살의 나이차이, 전직 승려였다는 알 수 없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내 몸에 칠했다. 그 색깔을 벗겨내려 오늘도 엄마는 고군분투하고 있고, 나는 그 색이 이상한 게 아니라며 투쟁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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