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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Jul 24. 2018

한국을 떠나고 싶은 욕망에 대하여

대학생이 된 후, 첫 여름방학이 왔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뛰어다닐 때 친구들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갔다. 그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라는 미니 홈페이지에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 새로운 사진 폴더들이 다수 생겨있었다. “2006.07 도쿄”, “2006.08 뉴욕” 등과 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심리치료 분야에서는 흔히 ‘눈에 띄게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성질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의 어떤 행동이 유독 눈에 거슬린다면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레이슨 페리(2018), <<남자는 불편해>>, 원더박스, p.21   


‘해외에 갔다 왔으면 왔지 굳이 폴더까지 만들어서 사진을 올려야 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시기, 질투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울적했고 비행기 한 번 타지 못한 내가 패배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지 두 달이 흘렀을까, 나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학과에서 단체로 제주도에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함께 비행기를 탔기 때문인지, 아니면 해외가 아니라 제주도에 갔기 때문인지 나의 욕망은 만족할 줄 몰랐다. 방학이 올 때마다 친구들은 해외로 나갔고 그때마다 나는 계속 괴로웠다.



나는 간절히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해외로 나가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는데 최소 80만 원 이상은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80만 원. 내가 방학 동안 열심히 과외를 해야 80만 원을 번다. 그중 교통비, 식비, 통신비를 빼고 나면 여행 갈 돈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나는 계속해서 해외에 나갈 여유가 없었다.

나갈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니 나는 점점 더 비행기를 타고 나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잔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해외에 나갈 수 있을까 찾던 중,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면 무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말고사를 이용해서 서류를 써서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떨어졌다. 서류에 여권번호도 써서 내라 하여 여권도 만들었건만 나갈 수가 없게 됐다. 그렇게 슬픈 겨울이 끝났다.


출국에 실패한 후 3년 동안 나는 해외에 가고 싶은 열병을 계속해서 앓고 있었다. 너무 나가고 싶어 이번엔 면접 리허설까지 해가며 이를 악물고 준비했고 여름방학이 오자 브라질로 떠날 기회를 잡았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나는 첫 비행부터 왕복 30시간의 비행을 하게 됐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로, 두바이에서 상파울루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의 감정은 여러 갈래로 교차했다. 브라질에 다녀온 후, 내 싸이월드 사진첩에도 브라질 폴더가 생겼다.

그해 여름이 끝나기 전, 나에게 용돈 140만 원이 생겼다. 갑자기 생긴 돈을 갖고 나는 망설임 없이 여행사 사이트에 들어가 결제 버튼을 눌렀다.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만리장성을 보러 중국으로 떠났다. 그해 가을, 내 싸이월드 사진첩엔 베이징 폴더가 생겼다. 두 개의 폴더가 생성된 이후, 나는 한동안 비행기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그 뒤, 우습게도 매년 10회 이상 출국을 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도쿄, 교토, 뉴욕, LA, 런던, 파리 등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 도시를 밥 먹듯이 갔다. 미국의 애틀란타나 일본의 천리시, 중국의 하얼빈과 같이 여행지로 잘 선택되지 않는 도시들도 가게 됐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신분이 상승된 것처럼 행복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를 외치며 해외 출장을 나갈 때마다 비행기 사진, 여권 사진 그것도 아니면 비행기 티켓이나 기내식 사진 등을 페이스북에 올려댔다.


어느 날부턴지 기억나지 않지만 ‘공항 패션’이라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손을 흔들며 출국하는 사진이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걸려있었는데 입은 옷이 무엇인지 어떤 선글라스를 썼는지가 사진 기사의 핵심이었다. 재밌었다. 비행기 타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면 공항 패션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을까 싶었다. 공항, 비행기, 해외 출국은 우리의 어떤 욕망을 자극하기에 반드시 하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힌 것일까. 나도 내 욕망을 마구 분출하며 비행기 탑승을 사랑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1년 타니 문제가 생겼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몸이 조금씩 부었고 몸무게는 똑같은 데 온 몸이 빵빵해졌다. 몸에 부기가 심하니 건강도 안 좋아졌다. 하루에 먹는 알약의 종류가 9가지로 총 27알이 넘어갔는데 그래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삿바늘을 꽂고 영양제를 맞아도, 비싼 한약을 먹어도 몸은 나아지지 않아 최후의 방법으로 이틀에 한 번 스포츠 마사지를 받았다. 그렇게 몸에 많은 돈을 투자하니 어느 날부터 부기가 빠졌다. 그 뒤론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붓기의 공포가 밀려왔다. 로망의 비행기가 걱정의 비행기가 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비행기를 타는 행위가 좋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 나갔다가 흥미로운 글을 접하게 됐다. 함께 책을 읽는 학인이 쓴 글이었는데 그녀는 비행기를 타기 전,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난다고 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게는 욕망의 결정체인 비행기가 그녀에겐 혹시 모를 순간에 대비하는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 그녀가 인용한 책이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었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운영되는 우편 비행기. 소식을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실린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비행장의 반응이 재밌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음 구절이다.  

    

“전등 불빛 아래,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앉은 농부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모른다. 농부들은 그들을 가둔 거대한 어둠을 뚫고 자신들의 욕망을 아주 멀리까지 보내고 있음을 모른다. 그러나 파비앵은 이제 막 천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높은 파고가 살아 숨 쉬는 비행기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전쟁 같은 뇌우를 열 개쯤 통과하고 그 사이사이 달빛 받은 공터를 지날 때마다, 그리고 이 빛들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기분으로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욕망을 알아본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불빛이 소박한 식탁을 밝히기 위해 빛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로부터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그 불빛 신호에 감동을 느낀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2018), <<야간비행>>, 문학동네, p.20


생각해보니, 내가 비행기를 탄 이유는 지상의 등불을 내려다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을 하늘 위에서 보기 위해 말이다. 앞으로는 비행기에 대한, 해외출국에 대한 욕망을 던져버리고 농부의 식탁 위에 올려진 촛불처럼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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