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 기다림의 시간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아직 아기는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었고,
몸은 생각보다 버틸만했다.
출산휴가로 집에만 있던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우리, 바다나 보고 올까?”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남편의 그 말이 참 고맙고, 반가웠다.
태교여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 었기에,
우리는 이번 여행을 ‘출산 전 마지막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목적지는 원주의 뮤지엄 산이었다.
남편이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하던 곳이었다.
유명한 전시공간답게,
사람도 많고 입장료도 만만치 않았다.
잠깐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기에
굳이 비싼 특별권이 아닌 기본권만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특별전까지 보고 싶다고 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 마음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 출산 전 언제 또 이렇게 오겠어..!’
그렇게 이번 여행은
지출이 아닌, 기억을 남기는 시간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야외 전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했고,
햇살은 유난히 맑았다.
드디어 특별전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마주했다.
그의 조각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서로 다른 자세의 인간 형상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누워 있었고,
누군가는 앉아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곧, 우리도 또 하나의 귀한 생명을 맞이하겠구나.’
원주를 떠나 강릉으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주문진 시장에서 회를 포장해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산달이지만,
그날만큼은 마음껏 먹고 즐기고 싶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가을의 끝자락, 파도는 유난히 힘찼고
바람은 얼굴을 세게 스쳤지만
그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월요일의 바다는 한적했다.
사람 한 명 없는 해변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며
그 푸른 수평선에 마음을 맡겼다.
이제 곧이겠지.
우리의 일상도, 삶의 모양도 바뀌겠지.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둘이 아닌 셋으로,
다시 이 바다를 보러 올 테니까.
바다의 여운을 뒤로한 채,
우리는 숲으로 향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솔방울 두 개를 내밀었다.
"이건 우리야."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솔방울을 하나 더 찾아왔다.
"이건 봄이(아이) 거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조용한 숲 속에서
세 개의 솔방울이 우리 가족처럼 손안에 모였다.
태어날 아이는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날 남편의 손에 담긴 온기만큼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작은 추억을 품은 채
우리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출산 전 마지막 여행.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날의 공기와 대화,
그리고 웃음이 아직도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