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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Jan 21. 2018

사랑을 노래하다, 제체시온 베토벤 프리즈

빈 분리파 예술을 엿보다

빈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먼저 내가 향한 곳은  제체시온(Secesion)이다. 빈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구글 지도에 제체시온을 찍어보니 숙소에서 20분 정도밖에 안걸려서 산책삼아 걸어갔다.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선 빈 거리를 걸었다.


빈 거리 걷기
영화 말레나의 한장면이 간판으로 쓰이고 있다
제체시온 황금돔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참 세상이 좋아진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조그만 핸드폰에 의지해서 여행다닐 줄 누가 알았겠는가! 관광지 이름 하나만 알면 만사오케이였다. 관광지 이름을 구글로 검색하고 위치를 찍으면 된다. 현위치에서 어떻게 가야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니 정말 편리했다. 핸드폰이 없어지면 순식간에 국제미아가 될 것 같았다. 핸드폰을 지도라 생각하고 소중히 움켜쥐고 다녔다.


황금빛 돔이 보인다


새하얀 건물 위로 황금빛 월계수잎으로 뒤덮힌 거대한 돔이 보였다. 드디어 제체시온(Secession)에 도착한 듯 했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어릴 때부터 클림트의 작품들을 좋아했었다. 황금빛 물결, 사람을 매혹시키는 화려함! 직관적으로 눈에 꽂히는 풍부한 아름다움이 좋았다.


제체시온 깃발이 나부낀다
제체시온 앞에 세워진 거대한 조각


라틴어 secedo(분리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제체시온은 그 말 자체로 '분리'를 뜻한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요제프 호프만 등이 모여 구시대에서 벗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종합 예술을 모토로 '분리파'를 만들었다. 제체시온은 분리파들이 기금을 마련해 만들어낸 공간이다.


오리엔탈적인 느낌이 풍긴다
분리파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부조


Die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제체시온 입구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분리파가 어떤 예술을 지향했는지 알 수 있는 글귀가 황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분리파에게는 정해진 형식이 없었다. 그들은 과거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했다.



그 밑으로는 세 여자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세 여자 얼굴 밑으로는 각각 회화(Malerei), 건축(Architektur), 조각(Plastik)이라는 황금빛 글씨가 솟아올라 있다. 분리파가 추구한 예술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이었다.  제체시온은 회화, 건축, 조각 심지어 음악까지 융합된 종합 예술의 결정체였다.


Ver Sacrum(거룩한 봄), 분리파 월간지 이름으로 쓰였다.
제체시온의 설계자 요제프 올브리히(Joseph Olbrich)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입장료 5.5유로를 내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제체시온은 분리파 창립맴버인 요제프 올브리히가 설계했다. 건물 외관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전시관 안에는 조그만 모형과 설계도가 전시되어 있었다.


제체시온 축소 모형
제체시온의 설계도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베토벤 프리즈는 베토벤 심포니 9번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표현한 거대한 벽화이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분리파의 제14회 전시를 위해 만들었다.

네모난 방 안에 들어가 고개를 들어 올리면 그제서야 기다란 벽화가 보였다. 한참을 서서 벽화를 바라보았는데 목이 어찌나 아프던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다. 크기면에서는 오히려 모네의 수련이 더 위압적이었던 것 같다. 위압적이진 않아도 벽화는 무척 성스럽게 느껴졌다.


The Beethoven Frieze: The Longing for Happiness. Left wall ( Wiki image)
The Beethoven Frieze: The Hostile Powers. Left part, detail ( Wiki image)
The Beethoven Frieze: The Longing for Happiness Finds Repose in Poetry. Right wall ( Wiki image)
The Beethoven Frieze: The Longing for Happiness Finds Repose in Poetry. Right wall, detail ( Wiki im


베토벤의 심포니 9번을 들으며 벽화를 둘러보았다. 전시 개막식날 이곳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 아래 베토벤 심포니 9번이 연주되었다고 하니 괜시리 그 장면을 상상해 본다.

고통과 절망 그리고 부조리 가득한 인간의 삶, 그 삶속에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것은 아마 사랑이 아닐런지. 키스를 하는 연인은 행복에 겨워 보인다. 이들에게는 전쟁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미움도 없다. 황금빛 옷을 입은 꽃밭 위의 여인들은 이들을 축복하는 듯 노래하고 있었다.



베토벤 프리즈를 보고난 뒤 기념품 샵으로 들어갔다. 나중을 위해 이날의 기억을 곱씹을만한 엽서들을 몇 장 골라왔다. 예산이 빠듯하니 만만한 엽서가 기념품으로 제격이었다.


제체시온의 황금빛 돔을 뒤로하고 이제 빈 시내를 가보기로 했다. 벽화가 있던 그 조그만 공간 속에서의 잠깐은 마치 꿈만 같았다. 다시 이 곳에 올 날이 있을런지, 좋은 곳에서는 항상 이런 생각이 솟아올라 맘이 울컥해진다.


안녕 제체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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