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떠났던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난
가족과 함께한 변산반도 여행
5월5일 어린이 날 차를 끌고 변산반도로
거의 6~7시간 걸렸다.
휴게소까지 당도하기도 힘들었다.
이참에 크나큰 교훈을 얻었지.
이런 쉬는 날에는 집밖에 나오는게 아니다.
흐엉.
너른 염전을 지나서 달리고 달리고.
부안 특히 내가 갔던 곰소항 근처는 젓갈이 유명하다고 했다.
아늑한 숙소에 도착했다.
피아노 위 화병에는 우리를 환영하는 듯한 꽃들이 한아름이었다.
원룸 형태라서 간만에 가족들끼리 한 곳에서 이야기하며 잠들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다.
바지락 회무침, 바지락 칼국수, 백합죽을 시켰다.
부안은 바지락과 백합이 유명하다고 하니 먹어봐야지!
우리가족 넷 모두 맛나게 음식들을 먹었다.
처음에는 회무침이랑 칼국수만 시켰다가
양이 많지 않아서 죽도 추가했다.
시키길 잘했다. 남김없이 싹싹 그릇들을 비웠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모처럼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름답게 가꾸신 정원.
타샤의 정원을 꿈꾸신다는 소개글을 보고 이끌려서 변산반도까지 갔는데
타샤의 책을 읽으며 상상하던, 늘상 내가 꿈꾸던 그런 정원의 모습이었다.
화병에는 꺾어다 놓으신 수레국화가 한다발이었다.
푸른 꽃잎이 활짝 피어나서 화사했다.
그리고 다양한 색상의 아이리스들이 정원에 가득이었다.
꽃들이 평소 보던 아이리스와 달리 큼직큼직했는데 독일 아이리스라고 하시더라.
철지난 튤립들은 이제 시들어가고 있었다.
튤립 구근들은 다 캐내어 색깔별로 분류해 따로 보관하신다고 했다.
구근은 그렇게 보관해야 알도 굵어지고 오래 볼 수 있다고 들었다.
개화시기가 각기 다른 꽃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어떤 곳에 식재할지 또 어떤 색감으로 그려낼지
신경쓸 구석들이 정말 많을 것 같더라.
노력을 들이는 만큼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정원 뒤쪽 구석에는 등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보랏빛 꽃들이 한가득 송글송글 매달려 있었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중에 정원을 가지게 된다면 등나무 한그루는 꼭 심고 싶더라.
색이 너무 고왔다.
정원 가운데 만들어진 연못에는 붉은 금붕어인지 잉어인지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근처에만 가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떼로 몰려들더라.
예전에는 이곳에 연을 키우셨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연의 성장이 엄청나 감당이 안되어
그냥 다 뽑아버리셨다고 한다.
묵었던 숙소에서 차로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내소사가 있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다가 아침에 그쳤는데
여전히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전나무 숲길을 걸을 때 흙길이 질척거려 걷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비가 와서 공기는 더 신선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좋은 흙냄새가 코를 찔러 상쾌했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오면 내소사 가는 포장된 길이 나온다.
길 좌우로 화사한 색상의 등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 등들을 보니 정말 절로 가는 길이구나 싶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 스님이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는 내소사가 아니라 소래사(蘇來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절을 두르고 있는 산봉오리들이 장엄했다. 구름들이 산봉오리들을 휘감고 있었다. 하늘에서 한두방울 비가 내렸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비 오는 날도 나름의 운치가 있어 좋았다.
내소사에 들어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멀리서 보야야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 아래 서서 올려다보니 나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솟아난 가지마다 푸른 잎사귀들이 가득했다.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자그마치 천년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자리에 서있었다.
내소사의 고려동종.
고려시대 만들어진 종인데 원래는 내면산의 청림사에 있던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 전란으로 절이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창살 같이 세워진 나무 기둥들 틈새로 종이 보였다.
쓸데없이 종이 왜 그리도 외로워 보이던지 모른다.
종은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화석처럼 여기 붙어있으니 말이다.
내소사 대웅전의 꽃창살.
결이 아름다운 나무 문에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괴하게 생긴 꽃들이 피어있던 나무 한 그루.
동남아에서나 필 법해 보이는 화려한 외양이었다.
꽃잎이 평소 집 근처에서 흔히 보던 목련과 비슷해보였는데
이 꽃은 일본 목련이라고 하더라.
일본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어째 이곳에 심어져있는지는 모르겠다.
절 뒤편으로 보이는 산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산이 절을 살포시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이곳이 왜 이토록 사랑받는지 알 것 같았다.
내소사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
아까 왔던 전나무 숲길을 되돌아 간다.
군데군데 심어진 작고 어린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쯤이면 쑥쑥 자라서 그늘도 만들어주고
숲길에 난 전나무들처럼 웅장해질까나?
내소사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식당들이 그득하다.
그 중 맛있어 보이는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여쭤보니
바지락전이 맛있다고 해서 하나 주문하고
구수한 청국장도 사람 수만큼 시켰다.
그리고 몽글몽글 뜨끈한 손두부도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이런 곳에 와서 먹는 전이랑 두부는 왜이리 맛있을까나?
그리고 카페 전나무집.
이곳에서 대추탕이랑 커피, 오디쥬스를 시켜먹었다.
대추탕은 진짜 찐~한 대추의 맛이었고 몸이 절로 건강해지는 듯 했다.
특히 맛 좋았던건 오디쥬스이다.
먹어보니 난생 처음 먹어보는 달콤함이었다.
생 오디만을 갈아서 만든 진한 달콤함,
여태 다른 곳에서 먹었던 오디주스는 물탄 오디주스였던가보다.
내소사를 나와서 채석강으로 가는데 날씨가 험악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나왔는데 빗방울만 안내릴 뿐 먹구름이 잔뜩껴서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거센 파도는 해변가에 서있는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밀려왔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 것일까?
모조리 다 하얗게 변해버려서 무서웠다.
층층이 쌓인 암석들은 중생대 백악기(7천만년 전)에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바닷물이 이리치고 저리치고 수없이 치대어 이런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넓은 해변가에 기이한 형상의 돌들이 켜켜히 쌓여있으니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대만 예류 지질공원에 갔었을 때가 떠올랐다.
채석강에서 수성당으로 차로 금방이다.
봄철 수성당 근처 유채꽃밭이 아름답다고 하여 찾아갔다.
차를 세워두고 10분쯤 걸었을까?
절벽 아래로 뿌연 안개와 기암이 뒤섞여 보였다.
계단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보았다.
동글동글한 색색의 돌맹이들 물에 젖어 반들반들했다.
무섭게 파도치던 채석강과 달리 이곳에서는 파도가 잔잔하게 철썩였다.
절벽 위를 올려다보니 약간 으스스했다.
기괴하게 생긴 암석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 깎여나간 것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절벽 위로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유채꽃이 끝도 없이 가득 펼쳐져있었다.
뿌연 안개가 온통 주위를 감싸고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꽃과 추억을 담았다.
주인 내외분께서 손수 아침을 만들어 내주셨다.
머무시고 계신 집으로 초대해주셨는데 이국적인 인테리어였다.
통 유리창으로는 아름다운 정원이 한 눈에 보였다.
화려한 무늬의 접시들과 테이블보, 말린 꽃들과 자수 용품들...
이런 곳에서는 뭘 먹어도 그냥 기분이 좋을 것 같더라.
첫날은 아주머니께서 고구마와 치즈를 얹은 빵과 샐러드, 커피를 내어주셨다.
다음 날 메뉴는 카레였다.
맛있는 김치와 함께 먹으니 꿀맛,
그리고 직접 내려주신 커피는 참 향긋했다.
주인 내외분과 우리 가족들과 이런저런 인생살이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신기했다.
나와는 무척 다르면서도 비슷한 그런 삶이었다.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들끼리
이런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가꾸신 정원 한 구석에
수레국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양귀비들은 붉은 얼굴을 밝혔다.
평소에 이 수레국화들을 너무 좋아해서
이쁘다고 연신 이야기를 하니
아주머니께서 한아름 수레국화를 꺾어다가 집에 가서 화병에 꽂아놓으라고 주셨다.
그리고 덩달아 조그만 화분에다 수레국화를 심어주셨지.
가족들은 차를 타고 서울 쪽으로 향하고
나는 시외버스터미널에 와서 대구행 티켓을 끊었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수레국화 화분과 다발을 들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