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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Aug 31. 2018

파리 물랭 드 라 갈레트, 르누아르를 만나다.

몽마르뜨 갈레트 풍차를 보러가는 길

미술관에서 사온 엽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의 작품 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Le Bal du Moulin de la Galette)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갈레트 풍차가 몽마르뜨 근처에 있다고 들어서 찾아가보았다.



이곳은 아마 테르트르 광장이었던 것 같다.
여러 화가들이 노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고 살까말까 고민에 빠졌다.
가격을 물어보니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구경으로 만족해야했다.



길을 걷다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제과점을 발견했다.
진열장 너머로 색색의 마카롱들이 탐스럽게 보였다.
프랑스 파리에는 유명한 마카롱 가게들이 많다고 들었던터라 호기심이 생겼다.
동행오빠와 함께 제과점 안으로 들어가서 마카롱 두개씩 골라 담아왔다.



포장된 마카롱은 고이 모셔두었다가 늦은 오후 에펠탑 잔디밭에서 안주삼아 먹었다.
그런데 마카롱은 사자마자 바로 먹는게 제일인가 보다.
한참 뒤에 먹었더니 꼬끄와 크림이 녹아 맛이 덜했다.



구글 지도에 물랭 드 라 갈레트를 찍고 찾아가는 길.
유난히 화창했던 날, 길가의 돌담에는 9월의 햇살이 은은하게 비쳤다.
나무 그림자가 일렁일렁이던 아름다운 길이였다.
번잡하던 상업지구와는 달리 갈레트 풍차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을 법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북적거리던 광장을 벗어나니 걸을 맛이 났다.
사실 몽마르뜨는 밀밭이 가득한 시골마을이었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파리 변두리인 몽마르뜨에 많이 모여 살았다.



길을 걷다가 철조망 너머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몽마르뜨에는 베네딕트 수녀원이 관리하던 포도밭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때 수녀원장이 처형되며 수녀원은 사라졌으나 포도밭은 남아있다고 한다. 내가 본 포도밭이 옛날옛적 수녀원의 포도밭이었을까?



멀리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보였다.
쭉 뻗은 돌길이 참 보기 좋았다.
어쩜 골목들이 이리도 아름다울까?



멀리 풍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하얀 아치형 입구에는 물랭 드 라 갈레트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현재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고 들었기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내가 갔던 날은 텅 비어 썰렁했던 물랭 드 라 갈레트.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서는 생동감 넘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황량할 뿐이었다.
잠시 문을 닫은 것인지 아니면 기약없이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몽마르뜨 부근에는 풍차 방앗간이 꽤나 많았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며 거의 사라졌다.
이곳은 갈레트(프랑스 전통 빵의 한 종류)를 만들어 팔았기에 '갈레트 풍차(Le Moulin de la Galette)'라고 불렸다.
나중에는 무도회장으로 쓰였는데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Le Bal du Moulin de la Galette) (출처:위키피디아)


무도회장으로 쓰였을 때 남겨진 그림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Le Bal du Moulin de la Galette)'이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맑고 화창한 어느 날 오후 젊은 청춘들은 무도회장에 모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행복이 가득하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1876년.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뒤이은 파리코뮌까지 상처로 가득했던 시절,
르누아르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그림으로 담았다.



그림에는 슬픔이 아닌 행복만 담고 싶다던 르누아르.
내가 르누아르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의 그림에서 한결같이 느껴지던 따뜻함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그 어떤 그림에서도 우울함이나 기괴함, 슬픔 등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르누아르는 행복을 찾아내어 화폭에 담았다.



물랭 드 라 갈레트에 갔다가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다시 테르트르 광장으로 향했다.
둘 다 맛집 찾아가며 식사를 해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적당한 곳에 들어가 먹기로 했다.
거리에는 화가들이 즐비하고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빨간 외관이 인상적인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신기했던 점 하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야외 테라스는 사람들도 넘치는데 안은 텅텅 비었다는 것이다.
의자도 훨씬 더 불편해보이고 계속 내리쬐는 태양볕이 따가울 법도 한데 많은 사람들이 다 밖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더라.



우리는 식당안으로 들어가서 푹신한 쿠션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다가와 테이블 옆 창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어쩌다보니 우리는 밖에서 먹는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싸인단도 보게 되었다.
싸인을 요구하는 척 하면서 소지품들을 털어간다는 싸인단. 빨간 외벽 밑에 서있는 여자가 싸인단 일행이더라.
나중에는 밥을 먹고있는 우리에게도 다가와 창문 너머로 종이를 내밀었다.
단칼에 거절하니 다시는 다가오지 않았다.



동행 오빠는 호기심에 'Moule' 라고 적힌 메뉴를 골랐는데 엄청난 양의 홍합을 마주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Moule(믈)은 불어로 홍합이라는 뜻이라더라.
처음에는 포차 안주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었다.
짭쪼름해서 감자와 같이 먹으니 찰떡궁합이었다.



나는 로스트 치킨을 시켰다.
엄청 큰 구워진 닭다리가 나왔는데 예상대로 무난한 맛이었다.
치킨을 구우면 맛없을리가 없지.
음식과 곁들여 먹으려고 나는 스위트와인, 동행 오빠는 맥주를 시켰다.



유럽여행 와서 깜짝 놀랬던 점이 하나 있다.
물을 돈 주고 사먹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든 메뉴 주문도 하기 전에 물이 서빙되어서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물을 마시려면 콜라 같은 음료처럼 사먹어야했다.


그런데 이 식당은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도 시원한 물을 가져다 주었다.
괜히 고마운 마음에 음식도 더 맛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린 즐겁게 점심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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