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기요미즈데라
지난 여름 교토 여행 중 찾아왔던 기요미즈데라. 해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봄이 왔다. 벚꽃 만발한 계절에 기요미즈데라를 다시 찾았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교토 원데이 패스 카드를 이용해 버스를 탔다. 30여분쯤 달렸을까 드디어 기요미즈데라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에 받았던 표에는 청량한 날씨가 느껴지는 그림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 받은 표에는 기요미즈데라 본당 위로 팝콘처럼 피어난 벚꽃이 보였다. 구름 없는 파아란 하늘에 담겨 있는 붉은 탑과 연분홍 벚꽃, 화사한 표를 손에 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淸水寺)'는 물이 맑은 사원이라는 뜻이다. 오토와 산 중턱 폭포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요미즈데라의 폭포 물을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이번에는 그 물 맛을 볼 수 있으려나?
산 중턱에 자리잡은 기요미즈데라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역사가 깊고 아름다워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기요미즈데라 본당은 보수 작업 중이라서 곳곳에 나무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2020년까지 공사가 진행된다고 들었다. 이곳을 처음 찾았던 때가 2017년인데 그 때 2020년은 무척 아득하게 느껴져서 언제 본당을 보려나 싶었다. 그런데 벌써 3년이 흘렀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본당은 가려져 있었지만 그 옆으로 붉은 삼층탑이 보였다. 삼층탑 너머로는 교토 시내가 펼쳐지고 군데군데 벚꽃이 피어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작년 기요미즈데라의 풍경이 오버랩되었다. 데자뷰 같이 느껴지던 순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는데 기요미즈데라는 그대로였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흘러 천년이 넘었겠구나.
큰 벚꽃나무를 쫓아 걸어 들어갔다. 담장 너머로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가득했다. 이 길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길 끝에 다다르니 작은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아마 오토와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인 듯 싶었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저 길을 따라 올라갔을 것이다. 오토와 산 등정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빨간 턱받이를 두르고 있는 지장보살들을 만났다. 작년에도 이곳을 스쳤었는데 또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다. 일본사람들은 부모보다 앞서간 아이들이나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지장보살을 세워둔다. 이 지장보살이 아이들을 구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다가 소원을 이뤄준다는 폭포수를 만나게 되었다. 길쭉한 손잡이가 달린 바가지에 흘러내린 물을 받아 마신다. 3가지 물줄기는 각각 지혜, 사랑, 건강을 뜻하기에 사람들은 이루고픈 소원과 관련된 물을 마신다. 멀리 계단 위까지 줄이 늘어져 있어 이번에도 물 마시기는 글렀다 싶었다. 우리는 살짝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우리는 폭포수를 마시는 대신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기요미즈데라 안쪽에 있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메밀소바와 말차를 하나씩 시켰다. 말차에는 곱게 빻은 팥앙금이 같이 나왔다.
부드러운 메밀면에 쯔유를 담궈 후루룩 먹었다. 양이 적은 것 같더니만 은근히 배가 불렀다. 일본에 오면 메밀소바를 꼭 한 번씩 먹게되는데 언제나 만족스럽다. 그리고 쌉싸래한 말차와 달콤한 팥 앙금! 이 상반된 맛의 조화는 내 입맛에 최고였다.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기요미즈데라를 걸었다. 벚꽃이 아닌 어딘가 익숙한 꽃이 보였다. 넓다란 붉은 꽃잎에 노란 술이 달린 동백(冬柏)꽃이다. 봄에 피어났으니 춘백(春栢)이라 불러야 할까?
땅 위에도 큼직한 꽃송이가 피어나있었다. 동백꽃은 질 때 툭- 송이송이가 땅 위로 떨어진다. 나무에서 피어날 때 한 번 보고 땅 위에서도 볼 수 있으니 참 고마운 꽃이다.
기요미즈데라 언덕길을 내려오는 길에 이름 모를 큰 석탑 하나를 보았다. 석탑 오른편에는 벚꽃이 몽글몽글 피었다. 축 늘어진 가지 위에 탐스럽게 매달린 벚꽃들, 다른 어떤 말이 필요할까? 아름다웠다. 계속 쳐다보게 되는 풍경, 이 모습을 보려고 교토까지 왔구나.
석탑을 돌아 나오니 조그만 못이 나왔다. 못 위로 수없이 많은 벚꽃잎들이 떨어져 핑크빛 범벅이었다. 교토에 오기 전 벚꽃이 꽤나 졌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었던게 무색할 정도로 벚꽃이 넘쳤다.
나는 벚꽃이 쨍하게 만개했을 때 보다 살짝 떨어지기 시작할 때가 더 좋다. 살랑살랑 꽃잎들이 떨어져 온 세상을 벚꽃으로 물들일 때, 바로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붉은 문 옆으로는 진달래 빛깔의 능수벚꽃이 한창이다. 수형이 아름답고 만개한 상태라서 인기만점이었다. 능수벚꽃 아래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어서 문 아래로 내려와 능수벚꽃을 담았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진분홍색이 더 곱게 보였다.
기요미즈데라에는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이 근처 어디에선가 기모노를 대여하고 온 듯 싶었다. 원색의 기모노는 하얀 벚꽃을 배경삼으니 더 돋보였다. 곱게 땋아올린 머리와 화려한 장신구에도 눈이 갔다. 다음번에 기요미즈데라를 찾게 되면 기모노를 입어보아야겠다.
기요미즈데라를 뒤로하고 니넨자나와 신넨자카를 걸어보기로 했다. 두번째 찾는 걸음이니 기분 탓인지 익숙하다. 아마도 내년이나 내후년 즈음 다시 이곳을 찾아올 것 같다. 그 날을 기약하며 안녕 기요미즈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