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Apr 24. 2019

봄 _ 하얀 모래 정원이 아름다운 고다이지

하얀 모래 위로 늘어진 능수벚꽃, 고다이지(高台寺)에서

아침에 기요미즈데라에 들렀다가 신넨자카와 니넨자카를 걷다보니 어느 순간 고다이지에 다다랐다. 고다이지(高台寺)는 160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다. 6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다이지 안으로 들어서니 화려한 봄꽃들이 먼저 우릴 반겨주었다. 벚꽃이 아니어도 봄을 맞은 교토는 형형색색 꽃들로 아름다웠다. 꽃들로 둘러싸인 입구에서 멀리 바라보니 뾰족 솟은 누각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핑크빛 솜뭉치같던 벚꽃 한 그루가 눈 앞에 서있었다. 푸르스름한 하늘과 대비되어 더 아름답던 벚꽃이다. 그 밑으로는 알 수 없는 비석들이 놓여져 있었다.



조금 더 깊숙히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가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을 마주치게 되었다. 하얀 모래 위로 노란 햇살을 가득 머금은 수양 벚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축 늘어진 가지마다 피어난 벚꽃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곳은 고다이지 안에 있는 카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카레산스이는 돌과 모래로 산수를 표현해내는 정원 양식으로 일본 선불교 사찰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작년에 은각사에 갔다가 보았던 모래 정원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다.



하얀 모래는 정갈하게 고무래질 되어 있었다. 마치 연못 위로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 했다. 가운데 봉긋 솟은 모래 더미는 무엇을 표현해낸 것일까? 모래로 산수를 표현해냈다고 하니 왠지 작은 산이나 언덕 같다. 솟아오른 언덕 주위로 동글동글 물의 파장이 이는 듯 보였다.



하얀 모래 위로 하얀 벚꽃잎들이 어지러이 떨어져 있었다. 하얗게 물든 이 곳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다가왔다. 늘어진 가지는 모래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바람에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도 같이 흔들렸다. 모래 위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는 연못 위에 비친 반영같이 보였다.



정원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는 난간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여 정신이 없었다. 번잡스러운 이곳에 서서 가만히 정원을 바라 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홀로 이곳에 서있는 듯 온 세상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바라보고 난 뒤에야 돌아섰다. 떨어지는 내 발걸음은 돌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아름다운 벚꽃은 계속 저 자리에 있을텐데 나는 떠나야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때 변함없는 모습이길 바라며 고다이지를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높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년에도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교토 전경을 보았었다.



그 때와 달라진 것은 가득 피어난 벚꽃 그리고 계단마다 켜켜히 쌓인 꽃잎 뿐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그대로인 듯 내 과거의 기억들과 오버랩되었다. 이렇게 교토의 추억이 켜켜히 쌓여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