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오랫만에 경주를 찾았다. 황리단 길을 잠깐 걷다가 대릉원에 들렸다. 경주에 올 때 마다 대릉원에는 꼭 들리는 것 같다. 천천히 산책하기 좋고 사계절 마주치는 풍경이 아름다워 그런가보다. 대릉원은 신라 시대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천마총도 이곳에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대릉원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노오란 산수유 꽃이 우릴 반겨 주었다. 산수유 꽃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아주 작고 이게 꽃인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게 생겼다. 멀리서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니 커다란 꽃다발 같았다.
대릉원의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아마도 이 연못에서 바라보는 황남대총이 아닐까 싶다. 맑은 날 연못에 비치는 반영이 아주 근사하다. 개나리 나무 한 그루에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나 있었다. 올해 처음 보는 개나리 꽃이다. 아직 다른 나무들은 헐벗은 상태였다.
황남대총 옆에는 키가 큰 목련 나무가 서있었다. 하늘로 높이 솟은 가지마다 하얀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는데 하늘에 열린 팝콘 같았다. 손 끝이 닿으면 톡하고 터질 것처럼 봉오리가 영글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갈색으로 변한 목련 꽃을 볼 때면 그렇게 지저분하고 볼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가지 끝에 곧 피어날 꽃 봉오리들은 무척 고고하고 기품있어 보였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능 주변이 노랗게 산수유 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릉원 안에 산수유 나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었다. 여름에 왔을 때는 초록 나뭇잎들이 무성했고 겨울에 왔을 때는 빈 가지였으니 산수유 나무인 줄 몰랐었다.
미추왕릉 근처에서 여린 잎사귀가 파릇파릇 돋아난 능수버들을 만났다. 늘어진 가지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버들나무 가지 위에는 조그만 새가 한 마리가 앉아서 쉬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막 돋아난 새싹들, 아름다운 봄 풍경이었다.
우리는 첨성대쪽으로 대릉원에서 나왔다. 대릉원에는 두개의 입구가 있는데, 우리는 보통 황리단길쪽 입구로 대릉원에 들어갔다가 첨성대쪽 입구로 나온다. 이 날은 날씨가 좋아서 자전거를 빌려 타보기로 했다. 대릉원 주차장 옆에 자전거 대여소들이 있었다. 자전거 대여료는 3시간에 5천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첨성대로 향했다. 첨성대 옆에도 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이 목련 꽃봉오리들도 곧 터질것마냥 영글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첨성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멀리서 잠깐 보고 지나갔다.
첨성대를 지나서 쭉 달리다보니 경주 역사 유적지구쪽으로 오게 되었다. 언덕 위에 나있는 흙길을 따라 한바퀴 돌았다. 잠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다 보는 풍경이 멋있었다. 멀리 산이 보이고 발 아래로는 조그만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번잡한 황리단길이나 첨성대 주변을 벗어나니 마음이 편안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대릉원을 두르고 있는 돌담길을 따라서 다시 황리단길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 골목 어딘가에서 핑크빛이 도는 하얀 매화가 핀 나무를 만났다. 만개한 매화에서 진한 꽃향기가 풍겼다. 이제 곧 있으면 매화와 산수유 꽃이 지고 벚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이곳은 사람들로 더 북적이겠지 싶었다. 벚꽃피는 봄에도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생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