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지많 쑥섬에 와야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수국 때문이다. 만개 시기는 약간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수국들이 남아있을 것 같아 쑥섬을 찾았다. 봄에 찾았을 때 몽글몽글 봉우리진 수국 꽃들을 봤었다. 여름에 수국 보러 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쑥섬을 찾아왔다.
한 번 와봤다고 풍경이 조금 익숙해졌다. 쑥섬에 가려면 고흥 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된다. 미리 '가보고 싶은 섬' 어플에서 예약을 해도 되지만, 우리는 항상 그냥 갔었다. 그냥 나로도항에 가도 표는 항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외에도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으면 배가 쑥섬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시간표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나로도항 근처에서 숙박을 했던터라 첫 배를 타고 쑥섬 안으로 들어갔다.
나로도항에서 쑥섬으로 가는 배는 아주 작다. 조그만 배에는 최대 12명만 탑승할 수 있었다. 어느 봄날 주말 오후 쯤에 왔었을 때는 사람들이 꽤 많았었다. 이번에는 주말이었지만 첫 배를 타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배에 오르면 정말 눈 깜짝할 새 쑥섬에 도착한다. 배를 타기 전 우리에게 쑥섬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어르신은 쑥섬 가는 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배라고 하셨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왠지 카누를 타고 가도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쑥섬은 왜 쑥섬일까? 나는 단순하게 쑥이 많이 나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다. 어르신 말씀은 쑥이 많이 나서가 아니라 쑥의 질이 좋아서 쑥섬이라 부른다 했다. 지금은 15가구 정도 밖에 살지 않지만 예전에는 아주 번성했던 섬이라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외나로도가 어업 전출기지로 쓰여서 물고기를 잡는 배들이 많았고 사람도 많이 살았다고 한다. 쑥섬도 외나로도와 더불어 흥했던 섬인데 이 작은 섬에 500명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 쑥섬은 과거에번성했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한적한 섬이 되었다.
쑥섬에 들어서면 고양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이 보인다. 괜히 고양이 섬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왓냐옹- 하며 우릴 반겨주는 고양이 조형물, 아기자기한 고양이 벽화, 고양이 할머니 집 그리고 진짜 고양이들! 쑥섬으로 들어오는 표를 구입하면 팜플렛을 하나씩 주는데 팜플렛 아래에 1,000원 쿠폰이 하나씩 붙어 있다. 이 쿠폰을 가지고 할머니 집 앞에서 고양이 간식을 하나 사서 고양이에게 줄 수도 있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맛있는 간식을 챙겨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본래 쑥섬에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동물 보호 단체와 연이 닿으면서, 주민들과 보호 단체가 함께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귀여운 고양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원래 트래킹 코스는 난대림을 지나서 섬을 한바퀴 도는 것인데 점심을 먹기 전 잠깐 시간이 남아서 수국이 가득 핀 정원에 먼저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쑥섬에 들어와서 오른 쪽으로 쭉 걸어 나가서 사랑의 돌담길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바로 수국들과 만날 수 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우와, 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여름날 그늘 없는 햇볕 아래를 걷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혹시라도 비가 내릴까봐 우산을 가져 왔는데 비가 아닌 햇빛을 막는데 쓰였다. 여름날 쑥섬을 둘러보려면 시원한 생수 한 통과 양산은 필수였다. 조그만 언덕을 오르고 나면 이제 수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형형색색 수국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만개 시기가 지나서 시든 수국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흐드러지게 수국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특히 송글송글 동그란 꽃잎 모양으로 피어난 팝콘 수국꽃은 한창 피고 있는 시기 같았다. 잘 닦인 길을 따라서 수국 꽃들이 가득한 담벼락이 쭉 이어져 있었다. 풍성하게 핀 수국들을 보며 길을 걸었다. 왼쪽으로는 수국 꽃들이 가득하고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니 눈이 아주 즐거웠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이 넓은 수국 정원에 우리 둘 뿐이었다. 쑥섬을 우리가 빌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국 정원 곳곳을 거닐며 사진들을 참 많이도 찍었다. 그늘이 없어 들고온 우산으로 햇빛을 가려가며 걸어 다녔다. 파란 우산을 들고 왔는데 탐스러운 파란 수국들과 함께 사진에 담으니 보기 좋았다.
수국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은 수도 없이 핀 수국 꽃들과 함께 내려다 보이던 바다였다. 멀리 수평선 부근에는 섬들이 줄줄이 이어진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홀로 우뚝 서있던 빨간 등대가 보였다. 오른편으로는 우리가 배를 탄 나로도항과 배에서 내린 선착장, 그리고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이 멋진 풍경을 보러 여기 먼 고흥 땅 쑥섬까지 왔구나 싶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 찍는 걸 멈추기가 어려웠다. 카메라에 담고 또 담고 아무리 담아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에 비할 바 못되었지만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수국의 이파리는 마치 깻잎처럼 생겼다. 멀리서 보면 무수히 많은 초록색 깻잎들이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그 한가운데 수국 꽃들이 포도 송이가 열린 것처럼 몽글몽글 피어났다. 커다란 수국 꽃을 두 손에 담아 보기도 하고, 작은 꽃잎을 만져 보기도 했다. 얼마 전에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꽃잎에 물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꽃잎을 건드리면 물방울들이 데구르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향기가 날까 싶어서 수국 꽃에 코를 킁킁거려 보기도 했다. 수국에서는 산뜻한 풀내음이 났다.
난 어릴 때부터 수국이 참 좋았다. 작은 꽃잎들이 여러개 모여 둥그렇게 피어난 모습이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인 파란색이라서 좋았다. 파란색 꽃은 그리 흔하지 않아서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분홍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묘한 빛깔의 수국을 보게 되었다. 그 때 알게 되었다. 수국 꽃은 토양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에 따라서 색깔이 바뀐다는 것을. 이렇게 여름마다 수국 꽃을 찾아다니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수국꽃 가득한 정원을 얼마나 돌아 보았을까? 생수통에 담긴 차가운 물은 동이 났다. 이제 정원을 떠나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갈 시간이다. 식당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에 난대림부터 시작해 쑥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어찌나 달게 느껴지던지, 정말 덥고 더운 여름이지만 수국이 있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