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티 내지 않는 것이다

복도 끝에 보이는 출구 같은 것들

by 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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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체로 조용히 망가진다.


눈에 띄게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대부분은 평소처럼 출근하고, 평소처럼 답장을 보내고, 평소처럼 커피를 사 마신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더 쉽게 지치고, 조금 더 자주 멍해지고,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조금씩 닳아갈 뿐이다. 그래서 더 늦게 알아차린다. 내가 버티고 있는 건지, 그냥 고장 난 채로 굴러가고 있는 건지.

우리는 버틴다는 말을 너무 자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회복, 성장, 의지, 단단함 같은 단어들로. 하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게 멋있지 않다. 대부분은 그냥 버티는 쪽에 가깝다. 출근해야 하니까 일어나고, 카드값이 빠져나가니까 계산기를 두드리고, 답장을 안 하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휴대폰을 붙잡는다. 몸이 좋지 않아도 일단 오늘 해야 할 일부터 끝내고, 마음이 가라앉아도 티 내지 않는 쪽을 택한다. 대단한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다. 안 하면 더 곤란해지니까 하는 것이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의지보다 사정으로 굴러간다.


아침부터 피곤한 날이 있다.

푹 못 자서가 아니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미 지쳐 있는 날. 휴대폰을 켜면 쌓인 알림이 먼저 숨을 막히게 하고, 뉴스는 세상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뿐이고, 통장 잔액은 괜찮은 척할 수준까지만 남아 있다. 회사에 가면 다들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피곤함과 예민함이 겹겹이 쌓여 있다. 웃어야 해서 웃고, 괜찮냐는 말에 괜찮다고 답하지만, 정작 정말 괜찮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사람은 용케 하루를 넘긴다.

점심시간에 편의점 커피를 들고 건물 밖에 잠깐 서 있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몇 초 사이에 길게 한숨을 쉬거나, 화장실 거울 앞에서 표정을 한 번 정리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누가 보면 우습고 사소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것들이 하루를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거창한 위로보다, 지금 당장 무너지지 않을 핑계 하나가 더 절실한 날이 있다.


대단한 희망보다, 오늘을 넘길 핑계 하나가 더 필요한 날이 있다.


누군가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자기 번호가 뜨기를 기다린다.

검사 결과가 별일 아니길 바라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별일일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다. 누군가는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오면서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달랜다. 누군가는 보험 적용이 되는지부터 먼저 확인하고, 누군가는 진료비 영수증을 보고 한숨을 삼킨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그 아픔을 감당하는 비용까지 따라붙으면 사람은 금방 철이 든다. 건강은 소중하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현실에서 건강은 종종 돈 문제와 같이 온다.


병원 복도는 이상하게도 삶을 닮아 있다.

환하고 정돈되어 있는데 안심되지는 않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건 알겠는데 썩 가고 싶지는 않은 공간. 거기에는 늘 정막이 있고, 차가운 공기와 잠깐 멈춘 발걸음이 있다. 누구는 검사실로 들어가고, 누구는 결과를 기다리고, 누구는 약을 받아 다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복도에서는 유난히 선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결국 자기 통증은 스스로 견뎌야 한다는 것. 누가 옆에 함께 있어도 마지막 불안과 통증은 각자의 몸 안에서 지나간다.


가끔 삶도 꼭 그런 복도처럼 느껴진다.

원해서 들어선 건 아닌데 어느새 와 있는 구간. 계속 앞으로 가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디까지 가면 조금 나아질지 알 수 없는 시간. 몸이든 마음이든 관계든 돈이든, 사람은 저마다의 불편을 안고 그런 복도를 지난다. 완전히 쓰러진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괜찮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 어쩌면 사람을 더 오래 지치게 하는 건 무너짐 자체보다, 그런 애매한 상태를 오래 끌고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오래 지치게 하는 건 대개 확실한 불행보다 애매한 균열이다.


누군가는 관계 때문에 지친다.

꼭 드라마 같은 이별이 있어서가 아니다. 답장이 점점 짧아지는 일, 예전 같지 않은 말투, 굳이 묻지 않으면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거리감 같은 것들. 관계는 대체로 큰 사건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갉아먹는다. 차라리 확실하게 끝나면 덜 헷갈릴 수도 있다. 진짜 피곤한 건,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이미 예전 같지 않은 상태를 오래 견디는 일이다. 단념도 못 하고 기대도 못 한 채, 괜찮은 척만 늘어난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지친다.

돈 이야기는 늘 현실적이라서,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월급날이 와도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고, 공과금, 통신비, 보험료, 구독료, 카드값을 제하면 남는 건 생각보다 초라하다. 좋아하는 것을 한 번 사려다가도 이걸 지금 사도 되나 싶어 가격표를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되고, 아프면 병원비가 먼저 떠오르고, 쉬고 싶어도 쉬는 동안 줄어들 통장 잔고를 계산하게 된다.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은 넘쳐나는데, 현재를 버티는 것만으로 이미 벅찬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삶이 극적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대개는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장하게 무너지는 대신, 평범한 얼굴로 조금씩 닳아간다. 남들은 다 비슷해 보이는데 나만 이상하게 지치는 것 같고, 유난 떨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다 보니 더 고립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페 구석에 앉아 얼음이 녹는 소리나 듣고 있는 시간이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억지로 웃을 필요도,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으니까.


멍하니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멀쩡한 척을 쉬는 시간일 때가 있다.


우리는 흔히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무너지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감정에 끌려가지 말고, 자기 몫은 스스로 책임지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말들은 대체로 사람이 이미 지쳐 있을 때 더 잔인해진다. 세상은 늘 버티라고 말하지만, 정작 무엇으로 버텨야 하는지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 책임은 개인의 몫이고, 회복도 개인의 몫이고, 관리도 개인의 몫이다. 마음도 알아서 챙기고 몸도 알아서 챙기고 관계도 알아서 지키고 돈도 알아서 벌라는 식이다. 그러니 다들 조용히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은 작은 것들에 기대게 된다.

커피 한 잔, 익숙한 음악, 편의점 조명, 퇴근길의 담배 한 대, 집에 들어가기 전 차 안에서 보내는 몇 분, 배달앱에서 늘 시키던 메뉴, 고양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 일, 샤워기 물줄기 아래 멍하니 서 있는 시간. 이런 건 대단한 해결책이 아니다. 내일 출근을 대신해주지도 않고, 밀린 돈을 갚아주지도 않고, 멀어진 사람의 마음을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기대어 산다. 해결되지는 않아도, 일단 오늘만큼은 넘겨야 하니까.


병원을 나와 다시 바깥공기를 마시는 순간도 어쩌면 그런 것 중 하나다.

완전히 나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시 와야 할 수도 있고, 아직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은 일단 출구 쪽으로 걷는다. 그리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완전히 회복된 뒤에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덜 나은 상태로도 다시 복귀한다. 회사로, 집으로, 관계 속으로, 밀린 일상 속으로. 그건 대단해서가 아니라, 결국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결은 못 해도, 잠깐 견디게는 해주는 것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비상구 같은 것이 있다.

누군가는 밤마다 편의점에 가서 캔맥주 대신 탄산수를 사 들고 오고, 누군가는 불 꺼진 방에서 유튜브 영상 하나를 멍하니 틀어놓는다. 누군가는 별 의미도 없는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달래고, 누군가는 괜히 집 안 청소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오래된 사진을 넘기고, 누군가는 빨래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며 세탁기 소리를 듣는다. 전부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완벽한 방법으로만 살아내지 않는다. 대충이라도, 잠깐이라도, 덜 무너지는 쪽을 택하면서 넘어간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이제는 안다. 초라한 게 아니라 현실적이라는 걸. 삶이 정말 힘들어질 때 사람은 거창한 철학보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을 찾는다. 명확한 답보다, 조금 덜 버거운 다음 한 시간을 원한다. 그건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실제의 생존 방식에 가깝다. 사람은 늘 멋지게 회복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적당히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숨을 돌리며, 적당히 포기할 것을 포기하면서 계속 간다.


사는 일은 생각보다 덜 아름답고, 그래서 더 진짜다.


결국 누구나 힘들다.

이 문장은 너무 많이 쓰여서 이제는 조금 닳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말을 가볍게 흘려듣는다. 하지만 닳았다고 해서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몫의 피로와 불안, 체념과 애매한 슬픔을 안고 산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쉽게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감춘다. 차이는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드러내는 방식뿐이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자기 방식으로 무너지는 중이다.


그래서 사람은 작은 것들을 붙잡는다.

커피 한 잔, 잠깐의 정적, 익숙한 음악,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 혹은 복도 끝에 보이는 출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삶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내일을 해결해주지도 않고, 잃어버린 마음을 돌려주지도 않고, 통장 잔고를 채워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은 그런 것들에 기대어 하루를 넘긴다.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 정도라도 붙잡지 않으면, 정말로 조금 더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도 무언가 작은 것을 붙잡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하고 있는 것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삶은 생각보다 자주 비장하지 않고,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초라한 것들 덕분에 살아남는다. 잠시 머무는 것도 버티는 방식이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내는 것도 삶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오늘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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