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리는 계절의 방식

강릉은 늘 바람으로 계절을 말한다.

by 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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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봄을 꽤 쉽게 알아챈다.

꽃이 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곳의 봄은 늘 바람이 먼저 데려온다. 어디선가 밀려온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차갑고 거칠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매섭게 불어오다가도, 그 안에는 분명 다른 계절의 기척이 섞여 있다.


강릉에서는

바람이 먼저 계절을 말한다.


바람이 강해지는 날이면 바다도 조용히 있지 않는다. 파도 위로 하얀 거품이 겹겹이 쌓이며 백파가 일어난다. 바다가 스스로 불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거칠게 부딪히는 물결을 보고 있으면, 겨울이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다에는 하얀 불이 일고

산에는 붉은 불이 오른다.


봄이 시작될 즈음이면 강릉의 산도 종종 흔들린다. 마른 바람이 능선을 타고 넘어가면 작은 불씨 하나가 순식간에 번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산불이라고 부른다. 뉴스에서는 재난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연은 늘 이런 방식으로 계절을 넘겨 왔다.


변화는 늘

조금 거친 얼굴로 찾아온다.


우리는 시작을 보통 따뜻한 장면으로 상상한다. 꽃이 피고, 햇빛이 부드러워지고, 어딘가에서 희망 같은 것이 조용히 찾아오는 순간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시작들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작은

먼저 흔들림으로 온다.


어떤 관계가 끝난 뒤에야 다른 시간이 시작되고, 어떤 마음이 무너지고 나서야 새로운 생각들이 자리를 만든다. 오래 붙잡고 있던 것들이 떠난 뒤에야 비로소 다음 장면이 나타난다.


그래서 끝이라는 것은

어쩌면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장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새로움이라는 것은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던 것들이 끝까지 저항한 뒤에야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겨울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봄은 조용히 오지 않는다.


오늘의 강릉은 그런 얼굴이었다. 차갑고 거칠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풍경. 겨울을 붙잡으려는 바람과 새로운 시간을 밀어 올리는 공기가 서로 부딪히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서 있으니 나 역시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붙이지 못한 시간들, 말로 다 꺼내지 못한 감정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까지.


사람의 시간도

계절과 비슷한 방식으로 흐른다.


붙잡고 있어도 결국 지나가고, 놓아주지 않아도 조금씩 멀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단순히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계절은 간다. 무엇도 완전히 붙잡아 둘 수 없고, 무엇도 영원히 멈춰 있지 않는다. 그렇게 바람은 지나가고 우리는 또 하나의 시작 앞에 서게 된다.


준비가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오늘의 강릉의 바람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끝이라는 것은 동시에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람은 지나갔고

겨울은 끝났다.


안녕,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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