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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 네가 있어 좋다
개무시는 아니야
여님의 우울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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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박이별
Nov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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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호자들은 둘 다 우울증이 있어서 약이란 걸 참 많이 먹어.
난 가끔 병원에 끌려가 바늘에 찔리곤 하지만, 그래도 건강한 편이라 약 따위는 잘 먹지 않지.
주사 맞을 때 소리를 안 내고 참는 편인데, 그러면 보호자들은 황송할 정도의 칭찬을 해주고, 병원에 걸려있는 맛있는 소고기 간식을 사주기도 하지.
병원은 무섭지만 이상하게 거기에서 나온 후 먹는 간식은 맛있어.
여님은 나를 데려오기 전부터 많이 아팠대. 그래서 목발을 짚고 걸어. 4년째 목발이란 걸 보지만 난 아직도 그 까만 막대기가 무서워. 나보다 훨씬 크고 가끔 큰소리를 내며 넘어지기도 하거든.
하지만 그게 없이는 여님이 나와 산책을 못하니까 내가 참아주는 수밖에.
그리고 그 까만 막대기가 나보다 더 여님과 오래 함께한 사이니, 내가 인정해 주는 거야.
여님은 몇 년을 아프고 나서 우울증이 생겼대. 근데 그 우울증이란 게 난 잘 이해가 안 돼. 남님도 우울증이라는데, 여님과 남님은 둘이 너무 다르거든.
남님은 주로 자. 가끔 멍해 보이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아 보이기도 해.
여님은 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어떨 땐 말이 많아지고, 애정표현을 많이 해서 날 귀찮게 하기도 하는데. 어떨 때는 없는 사람 같기도 해.
내가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고, 앞 발로 툭툭 건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어.
흠.. 이것이 개무시일까.
여님은 밤이 되면 불을 안 꺼. 난 낮에도 밤에도 졸리는데, 여님은 낮에도 밤에도 잘 안자. 흔들의자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다 그 자세로 잠이 들기도 해. 나는 거실 한쪽에 있는 여님의 폭신한 침대로 올라가서 잠을 청하지.
음. 역시 내 침대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쿠션이 좋아. 잠이 솔솔 와.
어느 밤은 여님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어. 가끔 울기는 하지만, 그렇게 소리 내서 우는 건 첨이었지.
여님은 나를 불렀어.
뭐, 평소에는 간식이 없으면 잘 안 가긴 하지만, 나도 눈치란게 있잖아. 일단 가봤지.
여님은 나를 들어서 품에 꼬옥 안았어. 여님의 심장 소리가 쿵쿵쿵 빨라. 평소보다 빨라서 나도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어.
하지만 난 꽉 안겨있는 건 답답한 걸.
입을 쩌억 벌리면서 하품을 했지.
여님은 울다가 피식 웃으며 날 놔줬어.
"으이그, 네가 그럼 그렇지. 공감은 개뿔!"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나는 여님을 계속 관찰했어.
비록 소파에서 좀 멀찍이 떨어진 침대 위에서였지만.
가끔 눈을 껌뻑이며 졸기도 했지만.
어쨌든 여님을 계속 지켜봤어.
여님이 소파에 누워 잠들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 멍
그러니까 여님아, 오해하지는 마.
나 무시한 건 아니다.
어쨌든 함께였다.
그러니까 담에 간식 많이 줘~
여기에 가득 넣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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