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리뷰
인상적인 부분을 메모했는데,
공통적으로 견디는 것에 관한 부분이었다.
온 힘을 다해 하는 일이, 겨우 견디는 일이라니 너무 미약하고 작아 보이는 일이 거꾸로 숭고해 보였던 시간들이었다.
서울에 있었던 형에게 형이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 그러냐고 하는 부분에서 심장이 쿵 했다. 겪지 않고 헤아릴 수 있을까, 절망뿐인 폐허 속에서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존재들이 있었다.
이렇게나마 기억하는 게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기억해야만 한다고, 꼭 기억하자고 되새기는 말 같다.
믿지 못할, 믿기 힘들 만큼 잔인한 인간들이 만든 비참한 삶 속에서도 믿을 건 또 다른 인간들일뿐이었다.
시민이 시민을 지키고
아이가 아이를 지키고
작은 존재가 또 작은 존재를 지키는 모습
언젠가 봤던 그날의 사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위험에 처한 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해진 이들을. 슬픔의 얼굴을 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엄마의 얼굴도.
시대는 변했어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한 시대의 이야기이자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이야기 속에서 분노하되 좌절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지워진 책 속에 아직 무엇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p83
우린 아침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볼 겁니다.
p8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한 시간여의 그 절망적인 침묵이, 그곳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킬 수 있었던 마지막 품위였습니다.
p105
처음부터 상황실장은 우리 목표가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p113
우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죽을 거지만, 여기 있는 어린 학생들은 그래선 안된다. 항복해야 돼. 만약 모두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총을 버리고 즉시 항복해. 살아남을 길을 찾아.
p116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p117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p134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p183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