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라는 요리를 먹지 않고 돌아오기
며칠 전에 공공기관에 일을 보러 갔다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옆자리에서 일어난 싸움을 보게 되었다.
아저씨 한 분이 앉아있고 그분을 상대하는 여직원은 무언가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하는데
서로 오해가 있었는지 점점 아저씨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다리던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결국, 아저씨의 화는 끓는 물처럼 천천히 끓어 올라 터지고 말았는데 아저씨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침내 차례가 와서 그 옆에서 상담을 받는 나는 앞에 있는 여직원과 손에 귀를 대고 큰 소리로 상담을 받아야 했다. 나중엔 엉덩이를 들고 상체를 서로 가까이 움직여 이야기를 나눴다.
내 앞의 직원은 젊은 여직원이었는데, 이런 싸움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조금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버럭버럭 소리 지르던 아저씨는 다른 직원의 개입, 그리고 여직원이 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달래자 대충 화를 누르고 씩씩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나올 때까지 대화는 계속되었는데 어찌 되었을지...
옆자리에 있었던 나를 비롯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조금씩은 스트레스를 전달한 다툼을 목격하고 돌아오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성격이 불같아서 젊을 땐 내 화를 상대방에게 터뜨리고 서로 불편해졌던 적이 종종 있었다.
나이가 드니 이제 그런 에너지? 도 없고 화를 내어 내게 이득이 된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경험 때문인지 웬만하면 그냥 나 혼자 기분 나빠하다 적당히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수양이 부족해서 좀 더 내 마음을 갈고닦으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중년에, 혼자 사는 나는 별로 화낼 것이 없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내가 일하는 센터가 있고, 스트레스 관리차원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있고, 특히나 요즘엔 거의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내 감정상태는 거의 플랫 한 직선을 그리고 있다.
창피하지만 지난주에 쓴 글에 부모님께 스트레스를 폭발시켰다는 이야기를 조금 자세하게 하자면,
내가 훅~ 짜증이 올라오는 경우는 부모님이 내 건강을 걱정해서 자꾸 이것저것 영양정보를 찾아서 먹을 것과 영양제 등을 갖다 주실 때이다. 냉장고에 음식이 쌓이고, 약통에 영양제가 마구 쌓이면서 먹어야 하는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어 거절을 몇 번이나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식이 아프다니 걱정이 되고 무엇이든 좋다는 것은 해주고 싶은 마음.
난 자식이 없으니 그 깊은 마음을 100%는 모르겠지만 부모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음식을 그냥 버려야 하고 약들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릴 때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한동안 호르몬약 때문인지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아서 힘들었는데, 그때 이 일로 부모님께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서 2-3 주 동안 전화 한 통도 없이 지냈더랬다.
조용한 집 안에서 평소대로 그림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은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에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약 때문에 감정 널뛰기 하는 못난 딸 때문에 부모님은 무슨 죄인가? ㅠㅠ
마침 부모님을 만나야 하는 일이 있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만나 식사를 하고 스리슬쩍 넘어갔지만, 명절엔 부모님께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암튼, 그 당시 마음이 불편하고 아파서 "초역 부처의 말"을 읽다가 <화라는 요리를 먹지 않고 돌아오기>를 읽고 만화처럼 그려봤다.
당신이 친구나 지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리를
대접하려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이 생겨
모두 바삐 돌아가 버렸다고 말이죠.
이제 식탁에는 손도 대지 않은 접시,
수복이 담긴 요리가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모두가 떠나간 뒤 당신은 홀로 쓸쓸히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