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에 대한 무지를 경계하며
아래 사이트는 대학원 과정에 있을 때 자주 들여다보던 PhD Comics라는 웹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는 원래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대학원 생활을 카툰 형식으로 가감 없이, 그리고 유머를 섞어 그려내면서 대학원생들 사이에 퍼지며 유명해졌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https://phdcomics.com/comics.php
여기서 PhD는 우리가 흔히 아는 Doctor of Philosophy의 약자가 아니라, 풍자적으로 Piled Higher and Deeper의 약자로 사용된다.
‘더 높이, 더 깊이 쌓인다’라고 생각해 보면, 대학원생들이 방대한 논문을 쌓아놓고 정신없이 읽어야 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 역시 그 당시 컴퓨터에 저장해 둔 논문 폴더를 보면, 파일 안에 또 서브파일, 그 안에 다시 서브파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안에는 찾아서 저장해 둔 논문들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쌓아만 두고 읽지 않은 것이 더 많았지만…ㅎㅎ)
PhD Comics의 이 약자는 바로 이런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웃기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 타로를 공부하면서도 다시금 느끼는 것이 있다: 어느 분야든, 알려고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지만, 무언가에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지식을 머릿속에 높이 쌓는 동시에, 그 깊이를 끝없이 파 내려가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얼마 전 위의 사이트를 떠올리며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그래프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김에 사이트를 둘러보니, 그 시절의 기억도 나고 여전히 재미있다.
위 그래프는 ‘내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와 ‘실제로 알고 있는 정도’를 축으로, 학부·석사·박사 수준을 대비해 보여준다. 당시 함께 공부하던 지인들과 이 그림을 보며 “이건 정말 100% 공감이다”라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A를 이해하기 위해 B를 파고, B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C를 파야 했던 대학원 생활 속에서 절망과 좌절도 많았지만, 이런 자잘한 유머 덕분에 울다가도 웃으며 지나올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터넷에 비슷하게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는 유머도 있다.
학사: 난 무엇이든 다 안다.
석사: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박사: 난 아무것도 모른다.
교수: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
위에 유머는 지식과 확신이 꼭 비례하진 않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른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 융합연구에 참여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융합연구이니만큼, 다른 분야의 박사들과 함께 일을 해야 했었다. 이렇게 함께 일을 할 때에는 각자 전문 분야에서 최적의 방법을 제안하고 서로의 분야에 적용해서 목적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내용이 나와야 한다. 종종 자기 지식에 대한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당시 회의에서도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문 몇 개 읽어봐서 이제 그 분야가 뭔지 다 안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할 말을 잃고...;;; 나는 내가 아는 것에 겸손을 같이 묶어야 한다는 점도 다시 머리에 각인시켰었다.
여전히 알고 싶은 것은 많고 공부해야 할 것은 더 많아지고 있는 2025년의 아쉬운 마지막 주말.
내년에는 교만은 멀리하고 겸손의 미덕으로 더 많은 것에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실행하고 머리에 잘 정리해 담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