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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피디 Apr 06. 2017

아무거나드로잉

[일상기술연구소 시즌2: 일상창작의 기술], 리피디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어슬렁 님을 모시고 진행한 [일상기술연구소 시즌2: 일상창작의 기술] 편의 녹음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 날 컨트롤룸에서 녹음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내용을 전부 들었었는데요, 주제는 물론 ‘일상창작의 기술’이지만, 제 느낌에는 ’질러보기의 기술’ 이라고 부제를 붙여도 좋을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었어요. 궁금하면 해보고! 궁금하면 해보고! 궁금하면 또 해보고! 어슬렁 님이 좌충우돌 부딪쳐가며 이것저것 몸소 해보신 다종 다양한 것들에 관해 듣고 있기만 해도 어떤, 생생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수혈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죠. 녹음시간 내내 ‘궁금하면 해 봐’의 은총이 스튜디오 가득히 넘쳐흘렀고, 패널들은 물론 창 너머 제 얼굴까지도 그 기운에 화사하게 물들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스튜디오 안을 간간히 들여다보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저는 한껏 고양된 나머지 곁에 있던 조수석을 돌아보며 충동적으로 속삭였습니다.

-나도 해볼까요? 아무거나 그리는 거?


조용히 앉아있던 조수석은 천-천-히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담담한 얼굴에 크림을 삼킨 고양이와도 같은 미소가 득의양양하게 번져나가기 시작했죠. 그 순간, 저는 제가 답정너 짓을 했다는 것을, 방금 말을 건넨 이 사람이 '궁금하면 해 봐' 족의 정통파 성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조수석의 초롱초롱한 두 눈에서, 어슬렁 님 못지 않은 에너지가 뿜뿜 뿜어져 나왔습니다.

어우, 그럼요. 해봐요 해봐요.


 이미 마음으로 먼저 들은 말이, 다정한 어조에 실려, 느리고 육중하고 강력하게 고막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납작하게 압도당한 영혼으로,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 저는 ‘#아무거나드로잉’의 세계에 입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B5 정도 사이즈의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사고, 갖고 있는 펜들을 꺼내다가 신중하게 이리저리 선을 그어보고서 ‘드로잉 용’ 하나를 결정했어요. 그리고는 매일 저녁, 하루에 하나씩, 손 닿는 데 있는 사물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물을 고르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가끔 실물과 그림을 함께 찍어 올리기도 하고요.

부담없이 하자는 마음에서 하루에 15분만 할애한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그 결심이 무너지는 건 금방이었습니다. 투입하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었죠. 요렇게 조렇게 뭔가를 그리는 게, 해볼수록 더 재미있어졌거든요. 뜯어서 버리기만 했던 아이비 크래커 패키지의 의외로 복잡한 구조, 알맹이 꺼내는 데 급급해 한번도 찬찬히 들여다본 적 없는 요맘때 아이스바 포장의 의외로 다양한 프린트 요소들, 그런 걸 새삼스레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전부 깨알같이 재미있었고, 그 덕에 비교적 지치지 않고 꾸준히 계속 할 수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달이 좀 넘어가면서부터 신변의 사물들을 그리는 데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라는 게, 사실 좀 뻔하잖아요. 그렸던 컵을 또 그린다거나, 그렸던 필통을 또 그린다거나, 그러기는 싫고 말이죠. 그때가 첫번째 고비였어요. 며칠 매너리즘에 빠져, 흐지부지 그만둘 뻔 했으니까요. 그런데 참 타이밍도 절묘하게, 제 페이스북 피드에 u-demy 드로잉 강좌의 스폰서 광고가 들어온 겁니다. 클릭 두어 번 만에 그만 홀딱 낚여서, 10달러를 결제하고 수강을 시작했습니다. 이게 또 신의 한수였네요! 하루에 5분, 10분씩 내키는대로 짧게 끊어들으면서, 강사가 가르쳐주는 이론과 실용적인 팁들을 끼적끼적 연습해보는 재미가 저를 다시 스케치북 앞으로 끌어앉히고 있습니다.



이 서투른 일상창작은 이제 저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누구도 알 수 없겠죠. 그런데요, 아무 데로도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정말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 토막토막의 짧은 창작의 과정들이 그 자체로 즐겁다는 사실을, 수혈받아야만 가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던 좋은 에너지를 자가발전 시켜준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버렸거든요.


일상창작의 기술 편을 많은 분들이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녹음에서 느꼈던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면 좋겠어요. 방송을 녹음하던 날 스튜디오에서 듣고, 가지고 돌아와 편집하면서 한 번 더 듣고, 편집 다 한 다음 모니터링을 하겠다며 괜히 또 한 번 더 들었습니다만, 세 번이 다 처음처럼 너무너무 재미 있었답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충전되는 기분이기도 했고요. 들으시다보면 '궁금하면 해봐'의 유혹을 느끼실 테고, 그냥 한 번 해봐도 괜찮겠다는 가벼운 충동도 스멀스멀 올라올지 몰라요. 그러다가 덜컥 거기 몸을 내맡기시면 제일 좋겠죠. 저처럼 간단한 드로잉으로부터라도요. 그리하여 해쉬태그 #아무거나드로잉 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마주치게 되걸랑, 우리 수줍은 좋아요❤️ 로 응원이라도 나누도록 해요. :-P



http://www.podbbang.com/ch/11810?e=2224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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