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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Apr 09. 2017

독립생활자학교: 프리랜서로 먹고사는 기술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독립생활자학교 두 번째 이야기

오늘은 독립생활자학교의 세 번째 이야기를 복습합니다.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4인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보편적 삶의 모델이라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직장의 개념, "정상"가족 모델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작년 11월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에서는 ‘독립생활자학교’라는 타이틀로 세 차례에 걸친 공개녹음을 진행했습니다. 홀로 선 개인, 그러나 고독이나 불안의 무게를 연대와 자유의 충만함으로 넘어서는 독립생활자로 살려면 과연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요?


독립생활자로 살아가는 한 방법이 나만의 작은 가게를 꾸리는 것이라면, 또 다른 방법은 조직에 속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노동력과 기술을 팔아 사는 것, 바로 ‘프리랜서로 먹고살기’겠죠. 


누군가는 직장에 묶이고 싶지 않기에 자의로, 누군가는 취업이 너무 어려워서 타의로, 프리랜서로 살아가게 됩니다. 시작이 어땠든 간에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일상의 모든 게 내 선택이자 내 책임이 된다는 의미인데요. 선택의 자유를 기꺼이 누리면서 책임을 잘 조절하고, 독립적인 삶의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가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할까요? 

이날 방송에서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두 분, 일러스트레이터 김호 님과 에디터이자 작가인 정유민 님을 기술자로 모시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의 기술자 1 | 일러스트레이터 김호


#1 직장 생활은 내게 맞지 않아처음부터 프리랜서로 커리어를 시작하다

대학에서의 팀 프로젝트 경험, 군대에서의 행정병 경험이 스스로 직장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직장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프리랜서로 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저녁에는 바텐더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낮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 실력을 닦았다. 

의뢰받는 일감이 얼마 없던 시절, 김호는 직접 프로젝트를 열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스튜디오 블랙아웃’이라는 이름을 걸고, 술과 관련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 일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스튜디오 블랙아웃의 첫 작업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맥주 도감』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었다. 작업의뢰는 불규칙하게 들어오고 마음은 너무 불안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예기치 않게 다른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스튜디오 블랙아웃의 이름으로 진행한 독립출판 프로젝트의 결과물 [맥주도감]


#2. 자아를 채우는 일과 통장을 채우는 일을 조합한다

김호는 조금씩 다른 성격의 일들을 조합해서 스스로 일하는 재미를 유지해나가려고 노력한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루이틀 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고생해서 일했으면 스스로 보상을 줘가면서 자신을 돌본다. 김호는 의뢰받는 일감들이 ‘자아를 채워 주는 일’과 ‘통장을 채워주는 일’로 나뉜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돌아갈 때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설명이다.


오늘의 기술자 2 |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작가 정유민


#1. 연쇄퇴자사결국 프리랜서로 정착하다

‘졸업하면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 졸업 후 생계를 유지하려고 알바를 구하려다 덜컥 취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직장 생활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해야겠다는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출판사에서 가장 오래 일을 했지만, 한 곳의 직장을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직장인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한동안 오가다가 결국 자신이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출근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마법을 경험하며, 그럼에도 ‘나도 외식 좀 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며,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2. 출판전문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가 명함을 대신하게 되다

시험을 앞뒀을 때 책상 정리가 하고 싶듯, 할 일이 많을 때 딴 짓이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프리랜서를 시작한 첫 해는 정말 바쁘게 일했는데, 그때 딴 짓으로 손을 댔던 것이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였다. 


〈뫼비우스의 띠지〉는 출판계의 소식을 깊이 있게 다루는 팟캐스트로, 때로 업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하기 어려웠을 일이라, 프리랜서가 되면서 평소의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겼던 셈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팟캐스트가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타이틀이 되어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출판계 사람들이 〈뫼비우스의 띠지〉를 들었고, 그 덕에 ‘〈뫼비우스의 띠지〉의 OOO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을 듣고 외주편집을 맡기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분도, 팟캐스트 PD 일을 제안한 분도 있었고, 원고 청탁도 적지 않게 받게 되었다.




두 분은 여러 모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방송을 굉장히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는데요, 김호 님은 (1) 커리어 시작부터 프리랜서로 시작하셨고, (2) 작업실을 따로 구해서 일을 하며, (3) 규칙적인 루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시는 반면, 정유민 님은 (1) 직장인과 프리랜서를 오가며 일하셨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2) 집에서 일을 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3) 좀더 유연하게 일상을 구성해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직종도 성향도 무척 다른 두 분이 '프리랜서로 먹고살기'의 기술로 꼽은 핵심 세 가지에는 교차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결국, 프리랜서로 잘 살아간다는 것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첫째, 일상을 어떻게 꾸준히 지탱하며 끌고 나갈 것인가. 둘째, 삶의 리스크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두 분이 이야기하는 기술의 핵심은 모두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었습니다.


프리랜서로 먹고 사는 기술의 핵심


정유민: 일단 첫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에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든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단가는 어느 정도 되는지, 이런 것들을 최대한 알리는 게 중요해요. 

두 번째는 일희일비하지 않기. 이건 약간 정신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직장에 다닐 때는 일희일비해도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월급도 계속 나오고요. 그런데 프리랜서의 상태에서 일희일비하면, 삶 전체에 다 영향을 줘요. 오랫동안 이런 삶의 방식을 유지할 거라면 자신만의 평정심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는 대비하기. 프리랜서의 삶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대비해야 됩니다. 물론 월급쟁이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그래도 회사에 나간다, 일을 한다, 월급을 받는다, 이 회사가 거지 같다, 다음 회사로 옮기자 이런 예상되는 코스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프리랜서의 삶은 당장 내일도 예측을 할 수 없어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끔 그런 일도 있거든요. 일하고 있는데 연락 와서 일정이 바뀌었다, 당장 내일 내놔라, 이럴 수도 있어요. 삶 자체가 굉장히 달라지고 그것들이 어떤 것도 금전적인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제 일상도 그렇게 규칙적이지 않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규칙적일 수가 없게 되기도 하고요. 뭐든지 잘 예측이 안 되는 삶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 많이 대비를 하고 마음도 좀 다지고 금전적인 부분도 많이 들어온다고 다 쓰지 마시고 (웃음) 모아 두시고, 없다고 또 불안해하지 마시고 미리미리 챙겨 놓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근데 말씀드린 이 세 가지는 제가 잘해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저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제가 가장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다른 분들은 그렇게 잘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김호: 거의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아요. 제가 꼽았던 건 첫 번째가 얼굴 두꺼워지기예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어필을 많이 하고 다니는 거죠. 그게 좀 서툰 분이시라면, 물성이 있는 걸 만드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만든 배지를 달고 다녔고, 여름에는 제가 그린 부채를 가방 속에 열 개 정도 넣고 다녀요. 주기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그 앞에서 막 부치는 거예요. “어 부채가 예쁘네요” “네, 제가 그렸습니다.” 이런 식으로.(웃음) 이건 제 분야에만 가능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요. 가장 가벼운 걸로는, 저는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이 정도 가벼운 어필은 항상 하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계속 노출되는 것도 중요해요. SNS로건 그냥 일상적인 행사를 통해서건요. “일을 따기 위해 꼭 가야겠어”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인사 나누고 이야기 나누는 거죠. 사람들은 필요할 때, 대개 가장 최근에 본 사람에게 연락을 하게 되니까요. 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일을 받은 적이 꽤 많아요. 

두 번째는 지치지 않기예요. 업무 시간을 자기 타입에 맞게 조절을 하고, 또 자기 자신한테 보상을 적절히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리랜서는 일이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몰려올 때 한없이 받다 보면 빨리 소진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게 적절히 보상해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으로는 역시 자기만의 규칙 만들기. 이게 하루 이틀 할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어서 지켜 나가는 게 본인에게 성취감도 줄 수 있고, 오래오래 버틸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즐거움과 괴로움


저 역시 직장에 속하지 않은 채 살게 된 지 좀 되었는데요.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면서 아침을 맞이할 때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실감하곤 합니다.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 그렇다고 해서 예전보다 딱히 더 늦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루를 내가 시작하고 싶은 시간에 시작한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유로움이 늘 좋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게 불규칙해질 수 있다는 의미고, 모든 일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끌고 나가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 지지부진, 엉망진창이 되어버립니다. 요즘은 다시 조직에 속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하고요.


직장을 다니면 직장의 리듬, 조직의 관성이 일의 속도를 포함,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결정해줍니다. 그에 반해 프리랜서로 살면, 일상의 모든 걸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작게는 언제 일어날지 언제 밥을 먹을지 언제 일할지 언제 쉴지까지요. 자유도가 높아져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리가 어렵고, 내 자신의 의지에 너무 많은 게 달려버리지요. 그러다보니 하루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며 살아갈까,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하게 됩니다.


이날, 김호 님과 정유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갖고 있는 삶의 기준, 일상의 선택들에 대해 곰곰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서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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