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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Mar 27. 2017

독립생활자학교: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는 기술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28화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4인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보편적 삶의 모델이라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직장의 개념, "정상"가족 모델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작년 11월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에서는 ‘독립생활자학교’라는 타이틀로 세 차례에 걸친 공개녹음을 진행했습니다. 홀로 선 개인, 그러나 고독이나 불안의 무게를 연대와 자유의 충만함으로 넘어서는 독립생활자로 살려면 과연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요?


독립생활자학교의 첫 시간에는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기’를 공부해봤습니다. 

여기서의 방점은 아마 ‘나만의’, ‘작은’, 그리고 ‘꾸리기’ 모두에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성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나의 선호와 나의 가치관을 담아낸 가게를 만들고, 작게나마 지속가능성을 쌓아가며 사업을 일상의 일부로 꾸려가는 삶. 이것이 독립생활자학교에서 살펴보려했던 삶의 한 방식입니다.


이날은 광명시의 빵집 훕훕베이글, 부산의 게스트하우스 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이 글에서는 훕훕베이글 박혜령 대표의 이야기를 복습해봅니다.





전국으로 배달하는 빵집 훕훕베이글’의 박혜령 대표


#1. 빵 먹기를 좋아하던 빵순이실연의 아픔을 달래려고 빵 만들기를 시작하다 

박혜령 대표는 빵순이라고 불릴 만큼 빵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자친구에게 차이면서 갑작스레 주말 시간이 여유로워졌고, 그 참에 먹기만 하던 빵을 직접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빵 만들기가 우연한 기회에 소소한 부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직접 구운 베이글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먹어본 지인 한 명이 자신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무인카페에 납품해달라고 요청했던 것. 일요일마다 굽는다는 이유로 ‘선데이 베이글’이라는 불도장을 쿡 찍어 팔았던 것이 ‘훕훕베이글’의 기원인 셈이다.


#2. 딱 3천만 원으로 홍대에 매장을 내다

당시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박혜령 대표가 빵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빵 만들기를 배운 건 아니었다. 그저 취미 생활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빵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게 된 건 궁금증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좋은데, 주변 사람도 맛있다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걸 좋아할까? 모든 걸 걸고 투자해보자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 2000만 원 만큼만 시험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영어 학원을 다니든 헬스클럽을 다니든 돈을 내고 다니는 것처럼,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고 실험해보는 데 비용을 들인다는 마음으로 작게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샵인샵(shop-in-shop) 형태의 매장이었다. 홍대 인근에서 지인이 꾸리던 크로아상 전문 빵집 한켠을 빌려, 베이글 전문 매장을 열었다. 보증금 500에 월세 150, 빵을 굽고 파는 데 필요한 집기를 사는 데 1500만 원이 들었다.


#3 광명시의 동네빵집전국으로 배달해요

5년간 직장에서 갈고닦은 브랜딩과 마케팅 노하우가 힘을 발휘했을까? 훕훕베이글은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 입소문을 타고 홍대 빵투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곧이어 배달 전문 스타트업의 제안을 받아 온라인 주문과 택배 배송으로 전국의 소비자에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훕훕베이글은 홍대에 문을 연 지 1년 만에 박혜령이 사는 광명시로 옮긴다.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는 속도에 자신감을 얻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필요가 없겠다는 결정에 이른 것이다. 훕훕베이글은 광명에 옮긴 후에도 조금씩 매장을 키워가며 차곡차곡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조건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버는 게 박혜령 대표의 목표는 아니다. 훕훕베이글은 주말에는 쉬고, 정해진 수량만큼만 팔고 일찍 문을 닫는다. 먹는 사람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도 행복한 빵을 팔고 싶기 때문이다.


훕훕베이글의 인기상품 '앙그린티 베이글'


남들도 좋아할까 궁금해서 시작한 빵집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혜령 대표의 '직장 생활 - 취미로서의 제빵 - 빵집 차리기'로 이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대적 결단을 내려 창업을 했다거나, 창업을 위한 아이템 발굴을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아니었다. 박혜령 대표는 직장인으로의 일상 속에서 주말이면 짬을 내 빵 만들기를 배웠고, 그 취미를 작은 기회들로 연결해나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 잠시 물러나 삶의 다음 단계를 계획할 때, 취미였던 제빵이 자연스럽게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대표

박혜령 대표가 5년가량의 직장생활을 그만 두었을 때, 처음부터 빵집을 하겠다는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빵 만들기를 좋아했지만, 단 한번도 자신이 빵으로 먹고 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는 박혜령 대표가 빵집을 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어찌 보면 어이 없다고 할 정도의 우연인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많은 경우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박혜령:

쉬던 중에 단골로 다니던 빵집에 가서 수다도 떨고 차도 얻어 마시고 그랬는데요, 거기에 제가 만든 빵을 가져가서 “이런 빵을 팔면 엄청 많이 살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안 할까요? 나는 너무 좋은데.” 그랬더니 그 빵집 주인께서 너무 쉽게 “그럼 네가 하면 되잖아.”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빵을 어디 가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전 기술자가 아니에요.” 그랬더니 “네가 기술자라 하면 기술자야. 뭐 예술가가 ‘나는 예술가입니다’ 하면 예술가지 뭐 딴 거 있어?” 라고 하셨어요. 너무 명쾌해지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데 그리고 내 주변 사람도 맛있다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걸 맛있다고 해 줄까,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냥 무작정 차렸어요. 대신에 조그맣게요. 막 인생을 걸고 빵집을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고요, 영어 학원을 다니든 헬스를 다니든 돈을 내고 되잖아요. 똑같이 뭔가를 경험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때 가진 돈으로 작게 시작했어요.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기 -  핵심기술 정리


'독립생활자'로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나만의 작은 가게를 시작하기 위한 핵심 기술은 무엇일까?

박혜령 대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관심분야의 깊이를 늘려가기

평소에 쌓아둔 취미 생활의 깊이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생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해오던 일이나 관심분야를 자연스럽게 확장해서, 틈 날 때마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두 번째 전문분야를 만들어가는 것이 나만의 작은 가게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취미를 그런 식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즐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이든 시간을 들여 배우고, 일을 벌여보고, 자신의 것을 쌓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결과가 덤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2) 가볍게 시작하기

내 가게를 열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범위 안에서 가볍게 시작해보길 권한다. 미리 샅샅이 조사하고, 가진 것 다 털어 시작한다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일상 속에서 연결되는 작은 시도들에서부터 시작해본다. 작게 시작해보는 것 자체가 두 발을 땅에 디딘 진짜 시장조사일 수 있다. 여기서 생긴 노하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방향을 다듬고 규모를 늘려나간다.


(3) 주변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엇보다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주변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지만, 늘 가장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흔들리지 않는다.




박혜령 대표는 마케터로 직장생활을 했고, 지금은 빵을 만듭니다. 직장에서의 일을 굉장히 좋아했었다는 박혜령 대표는 몇번씩이나 지금의 빵집 일과 예전의 직장일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2천만 원으로 훕훕베이글을 시작할 때도,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돈 안에서 경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직장이냐 창업이냐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다는, 삶 속에서 경유해나가는, 그리고 때로 오갈 수 있는 다양한 기착지들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이겠지요. 결정했다면 에너지를 집중하되, 지나치게 많은 의미와 무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박혜령 대표가 훕훕베이글을 '작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모든 걸 털어넣고,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비장하게 결심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여기까지만 시도해보자. 이 정도는 잃더라도 상관없어.'라고 한계를 긋고 몸에 힘을 빼는 것이 더 자유롭게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 한계까지 가본다면, 사업이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거기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리기 마련일 테니까요.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나는 얼마까지를 두려움 없이 걸어볼 수 있을까? 

박혜령 대표의 이야기 후에 스스로에게 물었보았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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