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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피디 Aug 01. 2022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2

택배계약 유랑기

택배박스가 차고 넘쳐 편의점 손님들의 통행을 가로막을 지경이 되자, 이 친절한 편의점에 내가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3시타임 편의점 알바는 보기 드물게 친절한 청년으로, 매일 눈도장을 찍다보니 이제는 한 두 마디 날씨 이야기라도 꼭 섞는 사이가 되었지만, 20개가 넘는 송장을 내밀 때마다 귀찮은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면구스러웠다.  


지난 한달간의 택배량으로 보면 이제 어느 3PL 업체에서도 마다할 규모가 아니니, 다른 3PL 업체를 찾아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겨울이 되어 돈 안 되는 고객으로 판정받아 또 다시 차갑게 내쫓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으면 그게 어디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다른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챙겨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택배에 발목잡혀 온갖 비효율을 감내하는 중이었다.  


택배 작업이 싫은 건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더 밍기적거리며 이 일을 못 놓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주문서를 출력해 들고, 한 벌 한 벌 체크하면서 꺼내다가 택배박스에 넣고, 그 박스를 테이프로 봉한 다음 받을 사람의 이름을 네임펜으로 쓰는 일. 내가 고민하고 연구해서 만든 옷에 관심을 갖고, 어떤 신뢰를 바탕으로 주문해준 그 사람들의 이름을 박스 겉면 테이프 위에 적어넣는 바로 그 순간을 좋아했다. 출력된 송장을 붙여버리면 가려져 아무도 못 보게 될 메모였지만, '김땡땡님'이라고 예우를 갖추어 적을 때마다 같은 필요에 공감하는 사람에 대한 동지애와 함께, 감사한 마음, 선물하는 마음이 새롭게 환기되곤 했던 것이다.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확인하고 나면 만나본 적도 없는 고객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S사이즈의 민소매티셔츠와 L사이즈의 원피스를 주문하신 경상북도 상주의 김땡땡 님은 자신이 입을 옷과 모친이 입을 옷을 함께 주문하신 걸까? 어머니 옷 선택하기 전에 전화로 한번 문의주셨으면 유장이 맞을지 한 번 확인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을텐데. 강서구 사시는 정땡땡님은 슬리브리스를 4벌이나 주문하셨구나. 사이즈를 다양하게 고르셨는데, 많이 만족하셔서 주변에 선물하시려는 걸까? 선물 받으시는 분들도 좋아해주시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택배를 싸는 일은 고객에 대해 일방적으로 유대를 쌓는 혼자만의 의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 몸은 하나고, 할 일은 100가지고, 택배 일이 잡아먹는 시간은 점점 터무니가 없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내 일상에 과도한 비효율을 초래하는 이 다정한 의식을 잠시 포기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네이버는 작년부터 셀러들을 위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3PL 업체를 연계해주는 서비스인데, 여기서 클릭 몇 번만 하면 여러 업체의 견적서를 받아볼 수 있다.  그날, 나는 편의점 통로에 택배박스를 민망하게 쌓아올려놓고 돌아오자마자 분연히 네이버에 들어가 풀필먼트서비스 견적신청을 접수시켰다. 이제 여러 업체들로부터 견적서를 제안받을 일만 남았다. 


그로부터 2시간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편의점 담당 택배 기사인데요, 왜 여기로 택배를 부치세요?”


뭐야 이 사람. 왜 다짜고짜 싸움을 걸어; 나는 움찔했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친절히 대답했다. 

“네? 왜냐뇨….음, 그 편의점이 가까워서요?”



“아니 제 말은요, 왜 따로 택배계약을 안 하시냐고요. 그러면 편의점으로 나오실 필요가 없이 저희가 직접 가지러 가니까요.”


아… 택배업무를 외주화 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택배를 발송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재고를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부분까지 맡기려고 한다, 지금 물량이 늘어나서 필요성을 절감하고 3PL 업체들에 견적서를 신청해둔 참이다, 라고 설명했다. 


“안 그래도 오늘 물량때문에 현타가 좀 와서, 좀 아까 업체들에 견적 요청을 넣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수고스레 전화해서 제안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희랑 직접 계약하시면 좋을텐데… 흠. 잠깐만요. 저희 소장님께 전화드리라고 할게요.”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

딸깍.


어리둥절한 채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곧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다. 우리 지역을 담당한 그 택배회사 대리점 소장이었다.


“3PL 서비스를 원하신다고요. 저희가 그거까지 해드릴 수 있는데~”

“아… 네? 거긴 택배만 관리하시지 않나요. ”

“함 나와 보이소. 저희 사무실도 구경하고, 같이 논의해 보십시다.”


사실 3PL 업체들 견적은 연초에도 한번 신청해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업체의 견적서를 받아보고도 결국 선정을 포기했던 건, 창고가 다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물건을 입고시키고, 반품된 걸 확인하고, 불량품을 수거하고 해야하는데, 인천이네 남양주네 하는 데까지 왔다갔다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를 담당하고 있는 택배 대리점이라면?


“거기가 어디 있나요?”

“XXX 쪽입니다.”

나는 지도를 확인했다. 차로 20여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상황이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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